이소라 (회화·3)
많은 기억들이 변색됐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에게 기억은 무의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 지난날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많은 부분이 마모됐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일기를 쓰던 날들로부터 너무나 멀어졌던 날들이기도 했다. 일기장에 여백으로 남겨진 부분들은 여전히 숙제처럼 남아있고, 그래서 나는 이제 미루고 미루던 일기를 몰아 쓰려고 한다. 밀린 숙제를 해내다 보면 언젠가 끝이 나는 것처럼 이 기록을 하다 보면 언젠가 오래 머물던 슬픔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1. 내가 응급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존재들을 만나고 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본다.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자연의 질서와 달리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삶을 종결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 존재의미를 형성할지 고민하며 살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시간과 존재를 엮어 철학적 성찰을 한 책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다. 하이데거의 책은 그동안 철학에서 사유되지 않던 영역을 지칭하기 위해 새로이 창조한 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일반 언어체계로 그의 책에 접근할 때,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난제로 다가오
사랑 이야기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보통입니다. 이번 보통의 영화에서 다룰 보통의 이야기는 사랑입니다. 영화 『노트북』을 통해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노트북』은 2004년에 개봉한 영화로 오래됐다면 오래됐고 유명하다면 유명한 영화입니다. 남자 주인공 ‘노아’는 여자 주인공 ‘앨리’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노아의 적극적인 감정 표현에 앨리도 싫지 않았고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영화를 보면 이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둘은
오랜만이네. 나는 너의 어제이자 오늘 그리고 내일이야. 수능 한파라는 말이 기분 탓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올해 11월 14일은 별로 춥지 않았던 것 같아. 한 달 정도 연기된 수능을 날씨도 알고 있는 듯해 기분이 묘하다. 수능 어땠어? 알아, 항상 내 생각만큼 잘 되진 않지. 시험이 끝나고 나서 느꼈던 그날의 공허함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어. 나에게 수능이란 큰 의미가 없다고 되뇌었지만 가슴은 아니었던 거지. 어쩌면 수능이 끝나고 본 하늘이 어제와 똑같아서 심통이 난 것일 수도 있어. 내 10대의 전부를 바쳐 수능이란 글자를 향
스타벅스의 로고 속 여성은 누구일까? 바로 바다의 요정 ‘세이렌(seiren)’이다. 세이렌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하반신은 새의 모습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다. 세이렌은 아름답지만 섬에 배가 다가오면 신비로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해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 죽게 했다고 한다. 세이렌은 ‘유혹’과 ‘속임수’를 상징한다. 스타벅스의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는 17세기 노르웨이 판화에서 묘사된 세이렌의 모습을 로고에 사용했다. 로고에 세이렌을 넣게 된 이유는 ‘세이렌이 뱃사람을 홀린 것처럼 사람들을 홀려서 커
2020년 11월 22일 (일) 오늘 친구들과 전주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서 너무 행복했다. 저녁에 도착해 야경을 구경하고 민박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1박 2일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각자 다들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영원히 가져갈 추억을 가지고 온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이 단어를 가장 정석적으로 표현하려면 ‘haven’t seen somebody in a while’으로 영작하면 된다. 말 그대로 그동안 못 봤다는 뜻이다. 짧게 줄여서 ‘it’s been a whil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구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손님 한 분께서 카드를 제게 던지며 “계산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차근차근하게 손님께 카드를 손님 앞에 있는 리더기에 꽂아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손님께서 화를 내시며 결제를 안 하신다며 자리를 뜨셨습니다. 이날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집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을 켜서 사고 싶었던 물건들을 일사천리로 결제했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서 결제한 금액을 확인해보니 정확히 24만 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매번 알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는 자유이다. 자유하면 쉽게 떠오르는 생각은 나의 의사대로 마음껏 선택할 수 있음일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비해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데에는 현실적인 여건이나 타인의 입장 등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 이렇게 자유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에 좌우되는 것 같으면서도 단순히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할 수 없는 층위의 문제를 지닌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다 보면 격차나 빈곤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유를 침해받는다고 여길 수
취미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의 첫 글은 사람들이 상대를 알기 위해 취미를 물어본다는 주제였다. 그런데 그 사람의 취미와 취향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얼마나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혹은 우리가 스스로의 취향을 알게 된다면, 나 자신을 얼마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내 취향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취향은 선천적인 것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 취향에는 주위 사람들이나 매체에서 보고 들은 것이 묻어 있다. 일상적으로 보는 드라마, 영화, 책, 만화 등이 잔상으로 남아 마음 한
한자문화권에서는 임금이나 연장자가 생전에 쓰던 이름을 ‘휘’라고 불렀다. 휘는 높은 사람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부를 수 없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을 피했는데, 이러한 관습을 피휘라고 일컫는다. 피휘가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는 주나라 때로 보고 있으며, 중국의 봉건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이 관습은 쭉 유지됐다. 한반도에는 언제부터 피휘가 들어왔는지 불명확하지만 최소 신라 후기로 추정된다. 일본은 집안 대대로 이름에 특정 글자를 넣는 문화가 있어, 피휘가 정착하지 못했다. 피휘는 무척 엄격히 행해졌다. 금나라 시절 과거 시험 답안지에
오늘날 드라마 속 이른바 금수저라 할 수 있는 재벌 남녀주인공은 우연한 첫 만남을 시작으로 결혼이라는 행복한 결말을 맺고 오래오래 살게 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금수저였던 공주도 드라마처럼 결혼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조선 건국 초기에는 왕비의 딸과 후궁의 딸을 모두 궁주라고 불렀다. 이후 태종대에 후궁과 왕비의 딸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왕비의 딸을 공주라 부르기 시작했고, 서얼차별법이 생기며 국왕의 딸에게도 적서의 차별이 적용됐다. 이로 인해 왕비 소생인 적녀는 공주, 후궁 소생인 서녀는 옹주라고 부르게 됐다
2020년 10월 29일 (목) 오늘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 친구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애한 끝에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식을 보니까 더 외로워졌다. 얼마전에 썸 타는 사이가 있었는데 요즘 좀 소원해졌다. 재미로 타로도 봤지만 당분간은 연인이 없다고 한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슬프다. [결혼에 골인하다] 결혼에 골인하다, 즉 ‘결혼하다’는 자주 쓰는 표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 가운데서 ‘to marry somebody’가 가장 대표적이다. 여기서 절대로 ‘marr
장소는 우리의 삶을 경험하는 세계이자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토대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경험하는 장소들을 삶의 배경으로 여기지만 장소가 개인의 삶에서 지닌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인간은 누구나 특정한 장소로 여행을 가거나 살고 싶다는 강한 로망을 지니기도 하고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장소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거나 사라졌을 때 상실감을 크게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우리가 특정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며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과 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
최근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 소중한 친구, 애인 등의 사람을 제외하고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생각한 끝에 결론이 났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가끔 책임감이 없는 제 자신을 볼 때 혹은 다른 사람 말에 쉽게 현혹될 때 집에 가서 혼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책임감과 관련된 모습을 담은 동화를 보면 조금은 힘이 될 것 같아 사연 보냅니다! 어느
이소라 (회화·2)
라푼젤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렸을 적 납치된 라푼젤은 십여 년을 높은 탑에 갇혀 사람이라고는 자신을 납치해 키워준 엄마밖에 보지 못했다. 라푼젤이 탑에 갇히게 된 계기는 불공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녀는 자가 격리 시대에 누구나 본받을 만한 인간상으로 칭송받는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만화영화「라푼젤」을 보면 주인공 라푼젤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알 수 있다. 라푼젤은 혼자 놀기의 달인, 즉 취미의 고수였다. 수록곡 ‘when will my life begin?’에서 라푼젤은 하루를 어떤 취미로 꽉
하얀 당신 허연 어떻게 검은 내가 하얀 너를 만나서 함께 울 수 있겠니죄는 검은데네 슬픔은 왜 그렇게 하얗지드물다는 남녘 강설의 밤. 천천히 지나치는 창밖에 네가 서 있다 모든게 흘러가는데 너는 이탈한 별처럼 서 있다 선명해지는 너를 지우지 못하고 교차로에 섰다 비상등은 부정맥처럼 깜빡이고 시간은 우리가 살아낸 모든 것들을 도적처럼 빼앗아 갔는데 너는 왜 자꾸만 폭설 내리는 창밖에 하얗게 서 있는지 너는 왜 하얗기만 한지살아서 말해달라고?R
2020년 10월 4일 (일) 최근 들어 감동적인 영상만 보면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것 같다.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인간관계다. 점점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게 두려워진다. 항상 느끼지만 겉으로 친하다고 해서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기 때문이다. [울컥하다] ‘울컥하다’는 감정은 갑자기 올라오는 것을 뜻한다. 울컥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다면 ‘up’이라는 전치사를 활용하자. 예를 들어 순간적으로 눈가가 촉촉해지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다면 ‘tear up’이라는 구동사를 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