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억들이 변색됐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에게 기억은 무의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 지난날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많은 부분이 마모됐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일기를 쓰던 날들로부터 너무나 멀어졌던 날들이기도 했다. 일기장에 여백으로 남겨진 부분들은 여전히 숙제처럼 남아있고, 그래서 나는 이제 미루고 미루던 일기를 몰아 쓰려고 한다. 밀린 숙제를 해내다 보면 언젠가 끝이 나는 것처럼 이 기록을 하다 보면 언젠가 오래 머물던 슬픔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1.
  내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언니의 연락을 받고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도착한 엄마가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정신병원이었다. 이미 예약이 꽉 찬 병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마다 선착순으로 진료를 하는 병원이 있었고, 수요일 아침 새벽 같이 일어나신 엄마는 나를 깨워 그곳으로 갔다. 택시에서 엄마는 병원 이름이 아닌 빌딩 이름을 택시 기사님께 말했다. 6층에 위치한 병원은 한의원과 같은 층이었다. 엄마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했다.
  일찍 도착했기에 다른 손님은 한 명 밖에 없었고, 나는 엄마의 지인이 추천하신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았다. 몇 가지 검사들이 이어졌고 의사선생님께서는 병명을 말씀해 주시며 약을 처방해 주셨다. 의사 선생님께선 내게 했던 말들을 엄마에게 그대로 전했고 엄마는 눈가가 젖어 나오셨다.
  자취방에 오신 엄마가 제일 많이 하신 일은 우는 것이었다. 본가에 언제 돌아갈 거냐는 나의 말에, 밥을 거의 다 남기고 못 먹겠다며 돌아서는 나의 모습에 번번이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 앞에는 아무 기분이나 표정이 없던 내가 멍하니 앉아 있었고. 그 모습에 다시 얼굴을 가리시던 엄마를 지켜보아야 했던 날들이었다.
  사실 응급실을 오갔던 날들과 처음 병원에 갔던 날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걱정이나 위로들이 전혀 가깝게 와 닿지 않아 쉽게 외로워지던 나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기 싫은 마음에 기억들을 꾹꾹 눌러놓은 걸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감정이랄 것들이 다 가라앉아 낮은 온도의 기분만 느꼈던 것 같다. 지치고 귀찮고 피곤하고 무기력한 기분들에 사로잡혀 쉽게 나오던 웃음도 어렵게 지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상처 입힌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다시 상처를 주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 지겨웠던 날들을 다시 돌아보니 새삼 나를 지독하게 사랑해 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여전히 나는 모나서 자주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지만, 그럼에도 다정한 눈으로 옆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 수필에서는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 내가 똑바로 아픈 기억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남긴 따뜻한 기억들 역시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안미진 (국어국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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