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한미행정협정인가?

 주한미군 범죄의 천국
  최근 잇따르고 있는 주한미군의 연쇄 폭력, 범죄를 통해 미군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5월 10일 서울 충무로 지하철역에서 미군 13명이 한국여성을 추행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을 집단폭행한 사건을 시발로, 5월21일 춘천에서는 미군 8명이 지나가는 택시에 아무 이유없이 행패를 부리다가 항의하는 시민들을 집단폭행했고, 5월22일에는 미군이 군클럽 여종업원을 납치해 구타 후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5월 23일에 수원에서는 미군들이 차량접촉 시비를 말리던 일가족을 집단폭행 하는 등 미군범죄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미군범죄는 1945년 미군주둔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발생했다. 1992년 동두천에서 발생한 잔혹한 윤김이씨 살해사건은 미군범죄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며, 한국정부의 집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5건, 연평균 2천여건, 모두 합하면 최소한 10만건 이상의 미군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범행미군들은 죄를 지어도 거의 처벌되지 않는다. 한국정부의 굴욕적 자세와 법을 추월해 군립하는 주한미군당국의 오만함도 그 원인이지만, 한미행정협정은 미군범죄에 대한 합법적 '면죄부'를 발행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한미행정협정 이란?
  일반적으로 국제법상 외국군대나 그 구성원은 주둔하는 나라의 법률 질서를 따라야만 한다. 다만 외국군대는 주둔하는 나라에서 수행하는 특수한 임무(국가안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또한 군대라는 특수기관을 고려하여 쌍방 법률의 범위내에서 일정한 편의와 배려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것은 해당국가와 미군간에 행정협정(SOFA)의 체결로 보장된다. 그런데 한미행정협정은 미군들에 대한 편의제공 차원을 넘어 한국의 주권을 상실할 정도로 다른 나라 협정에 비하면 지나치게 불평등하다.
  1967년 한미행정협정이 체결된 한미협정은 외형적으로 다국협정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국제법상 가장 후진적이라고 평가되는 '미국-이디오피아 협정'과 다름이 없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국민들의 반미의식의 성장에 따라 한미행정협정의 여러가지 문제가 제기되자 1991년 2월1일 개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개정된 것은 전체 33개의 조항중 22조의 몇 개 조항에 불과했고, 개정된 조항도 다른 조항의 침해를 받아 본질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개정이었다. 한미행정협정은 냉전구도에서의 '지혜를 베푸는 자'와 '은혜를 받는자'라는 일방적 불평등 관계에서 한치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한미행정협정 22조 형사관할권의 주요 독소조항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정부의 형사관할권 행사의 제한(본협정 22조 3항, 합의의사록 22조 2항)
  한미 양측이 모두 형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 미국이 요청하면 한국은 재판권을 포기해야 한다. 한국에 전속적 관할권이 보장되어있는 사건의 경우에도 미국측이 요청하면 한국은 재판권을 포기해야 한다. 67년 한미행정협정이 체결된지 1년후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전체 미군범죄의 0.7%로 ANTO 52%, 일본 32%, 필리핀 21%에 비해 지극히 낮다. 

  2. 미군부대 안에서 압수, 수색, 검증의 불가(합의의사록 22조 10항)

  협정은 미군부대에 대한 한국 수사당국의 압수, 수색, 검증을 불가능하게 규정하고 있어 미군이 범죄를 행한 후 미군부대 안으로 도주하는 경우 한국경찰은 별다른 방도를 취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부대안은 범죄 미국의 성역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독일은 현행범일 경우는 구속영장 없이도 미군을 체포, 구금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미군부대 안에서 범죄 예방차원에서 미군의 동의없이도 무기를 압수하거나 구금하는 것이 가능하다.

 3. 한국정부의 범죄미군에 대한 구속수사 불가(본협정 22조5항)
  내국인인 경우 사소한 폭행사건에 대해서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992년 충격을 던진 천인공노할 살인을 저지를 윤금이씨 살해범 케네스 마클 이병은 국민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구속수사를 받지 않은것은 물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내려진 94년 5월17일에서야 한국 감옥에 수감되었다. 구속 수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증거인멸이나 알리바이 조작등 미군들의 범죄 입증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4. '공무'의 개념(양해사항 22조 3항)
  미군이 공무 수행중에 저지른 사건이나 범죄에 대해서는 한국정부는 형사재판권을 가질 수 없고 재판권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공무'에 대한 판단이 미군당국이 제시하는 공무증명서에 의해 결정되기때문에, 공무가 아닌 범죄도 미군측에서 공무라고 우기면 공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얼마전 물의를 빚었던 미군헌병대의 한국인 세모녀 감금폭행사건에서도 미군당국은 폭행미군들에 대한 한국검찰의 소환요구를 위의 조항을 악용, 거부했다. 일본의 경우 미군의 공무에 대한 최종 판단은 일본의 법원이 하도록 되어있다.

  5. 미군은 죄를 지어도 한국법원의 재판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합의의사록 22조 9항)
 미군은 미국군대의 위신과 걸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한국법원의 재판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재판을 거부할 자유를 미군에게 부여하는 결과가 되게 하고 있다.
 
  주권 부정한 지나친 특혜
  최근 김영삼 정부는 잇따르는 사회적 비판여론에 밀려 한미행정협정의 개정 추진의사를 밝히는 등 지자제 선거를 앞두고 국민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한미행협 개정 추진은 2가지 점에서 중대한 문제가 있다. 첫째, 미군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협정의 개정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의 굴욕적 자세와 미군당국의 점령군적인 태도가 청산되어야 하며 한미양국에 있어 인적ㆍ물절ㆍ제도적 장치 마련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한미행정협정은 22조 형사관할권에만 독소조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33개 조항 모두가 불평등한 요소로 가득차 있다.
  한미행정협정은 22조 이외에도, 미군에게 피해를 당한 한국민의 민사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는 23조, 미군고용노무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17조를 비롯하여 미군기지와 시설에 대한 무상사용, 미군기지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면제, 출입국, 통관, 관세상의 지나친 특혜 등 대한민국의 주권을 부정하고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정이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제2의 '을사보호조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단 50년을 맞이하는 이때 한미행정협정의 평등한 개정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자, 미군의 범죄와 횡포에 시달리는 수많은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램이다. 민족의 자주권과 자존심을 걸고 한미행정협정의 전면 개정운동에 나서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조재학<주한미군범죄 근절을 위한 운동본부 대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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