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이 사는 법

  올해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새 학기를 맞았다.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나아가는 ‘위드 코로나’ 국면이라고 하나 3년 넘게 긴장과 위축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피로감은 고조되고 일상 회복에 대한 갈증은 심화되고 있다. 개학을 전후해서는 대내외적인 갈등과 혼돈을 겪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의 축제’이기는커녕 우리 사회 갈등과 분열의 민낯을 확인할 뿐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무고한 인명 살상의 참상과 함께 세계 평화가 여전히 요원한 숙제임을 깨닫게 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와중에도 서로의 고통을 분담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마스크 기부와 ‘착한 임대인 운동’이 일었고 취약 계층에게 온정을 베푸는 천사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대통령 선거일이 임박해 발생한 동해안 산불 피해 지역을 향해서는 시민들이 ‘착한 노쇼 기부’로 응답했다. 피해 지역에 숙박업소의 방을 장기간 예약한 뒤 이를 이재민이나 소방관들이 머물도록 내놓는 식이다. 숙박업소 주인도 숙박비 절반을 깎아 기부에 동참했다. 경북 울진의 한 중국집이 산불 작업자들과 이재민들에게 음식 값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배달받지도 않을 음식 값을 결제하며 음식점 주인을 응원하는 ‘돈쭐 기부’도 일어났다. 
  착한 노쇼는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숙소를 예약한 뒤 방문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후원하고 숙소 이용 후기를 통해 응원 메시지를 남기는 방식이었다. 3월 초 단 이틀 동안에만 6만 건이 넘는 숙소 예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관계 맺고 사는 인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학자들은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체격이 크고 힘도 세며 두뇌도 우수한 네안데르탈인까지 멸종시키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비결을 ‘사회성’ 덕분이라고 손꼽는다. 네안데르탈인은 고작 7~8명이 집단을 이루어 생활한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최대 400명 정도의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회적 교류를 통해 종족을 보존함과 동시에 ‘더불어 함께하는’ 가치를 유전적으로 지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자립도 의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되레 자유롭고 다양한 의존의 가능성이 넘쳐흐를 때 우리가 갈구하는 자립도 가능해진다.
  인공지능을 골자로 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등장한 2016년 이후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현안으로 대두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공유대학과 연합대학 등 새로운 네트워크형 교육 모델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대학과 한밭대의 통합 논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역 거점 대학 간의 통합 추세는 2000년대 중반부터 끊이지 않고 진행된 추세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대학은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아 100년의 미래가치를 탐색 중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건 소통이다. 우리는 관계 맺고 정보를 공유하며 타인과 협력한 덕분에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고도의 문명을 이룬 호모사피엔스의 후예 아니던가. 사람은 연결과 관계만으로도 바뀔 수 있다. 내 주장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면 납득하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학생, 직원, 교수, 동문 등 우리 대학 구성원 하나하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론 과정이 중요하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