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생은 몇몇 학교 건물들은 들어가 보지 못한 채 졸업한다.

늦은 시간에 굳이 영탑지에서 만나자는 게 생뚱맞았다. 하지만 그런 생뚱맞음이 있기에 더욱 그 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한다고 이제 와서 사람이 바뀌거나 하면, 그거야말로 슬픈 일이 아닐까. 달빛이 펼친 흰 옷자락이 유유하게 수면을 가르며 지나갔다. 벚꽃 잎이 호수에 빠져 저들끼리 떼춤을 추며 흘러가고 있었다. 재희는 문득 4년 반 동안의 기억을 모두 모아 저 호수에 폭, 빠트리고 가야하나, 잠시 생각했다. 태워버리고 싶은 가슴 아픈 기억도 있었고 가장 소중한 곳에 영원히 품고 싶은 좋은 기억도 가득이었지만, 어쩐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 같이 벅찬 마음들 뿐이라 계속 품고 있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곧 다가오는 코스모스 졸업을 앞두고 든 쓸데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은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왔지? 오늘 막동에서 돗자리 펼까? 벚꽃 펴서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내가 너 졸업 기념으로 맥주 사갈게! 돗자리랑!”
 별 거 없는 날을 특별한 하루로 만드는 게 은채의 특기이며 그래서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 몇 분 더 영탑지에 앉아 있다가 막걸리 동산으로 출발했다. 막걸리 동산은 잘 생각해보면 참 귀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막걸리라고 하면 –술이 애초에 그런 것이지만- 뭔가 어른의 느낌이 강하다. 어렸을 때는 막걸리라는 술을 생각하면 항상 그 배경으로 조선시대 같은 옛날에 농사일을 한 어른들이 힘든 일이 끝나고 땀을 흘리면서 새참과 함께 마시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에 비해 동산이라는 말은 얼마나 아기자기한 말인지. 텔레토비 친구들이 사는 햇빛이 따뜻하고 날씨가 맑은 이상적인 보금자리 꼬꼬마 동산이 떠오른다. 이 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만난 ‘막걸리 동산’에, 대학 4년 반 동안 참 많이도 갔었다. 모두 갓 스무 살이 넘어 아이도 어른도 아니라는 불안한 지면에 서 있었고 그 간극 사이의 위화감과 불안함을 잊고 아이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다들 자주 막동에 갔다. 어쩌면 모두가 ‘막걸리 동산’처럼 아이러니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재희야?”
 은채의 목소리였다. 재희는 기쁜 마음에도 말없이 웃고 돗자리를 깔았다. 은채가 가져온 블루투스 스피커를 적당한 볼륨에 맞추고 시티 팝을 틀었다. 뭐가 그리도 지쳐버렸는지 우리는 맥주도 저 옆에 두고 일단 누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작은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따뜻한 바람에 곡조를 실었다. 은채와 처음 만났을 때는 1학년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하기 싫었다 뿐이지 할 일이 무엇인지는 항상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되고 처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을 느꼈다. 많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실이라는 제약을 크게 느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마 영원할지도? 그렇지만 분명 그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오랜 휴학을 선택했던 은채도 어쩐지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 하긴 어른이란 게 뭐야.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아가다 보면 왠지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누구나 어느 순간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평생토록 어른에 수렴해 가는 것이 아닐까.
 “건배!!”
 겨우 일어나 우리는 잔을 들었다. 약간 식은 맥주였지만 왠지 맛있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이유도 없이 웃었다. 둘은 동시에 밤하늘이 서로의 눈동자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들은 평생토록 서로를 바라봐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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