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말을 고르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항상 사포질을 하지 않은 거칠 거리는 단어의 범람이었지. 그래서 그냥 아예 입을 다물었더니, 그건 또 그것 나름 내가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더라고. 그럼에도 어쩌겠어. 그냥 쓰는 거지. 그냥. 이유가 없을 때 붙이는 말. ‘그냥’ 그 한 마디 부여잡고서, 멀리 걸어가는 네가 좋아 그림자 흉내 내듯이 하루를 적어가고 생존해 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얼마나 쉽고 간편하니? 인스턴트처럼 내 마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간단한 한 끼 식사처럼. 허겁지겁 먹고 뭘 먹었는지, 어떤 맛이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면 잊어버리고야 마는 감정들.

그러나 요사이 내 글은 갉작거리는 소음에 불과해서, 그냥 파도에 휩쓸려 영영 사라지게 버려두고 있다. 얼마나 큰 주제라고 벌써부터 자기 기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윙윙거리는 울음을 타고 희게 사라지는 거라고 하면, 너는 그 작고 예쁜 입술을 빼쪽 거리며 나를 바라보겠지.
날이 덥다가도 서늘하다.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바람에 놀라 겉옷을 다시 여몄지. 여름이 문틈 넘어 보이다 무엇에 겁을 먹고 도망쳤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아직 봄이 온 것 같지도 않은 데, 벌써 우리는 계절 학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내가 게으른 탓일까. 너무 오래 잠을 자버린 탓일까. 빛이 너무 강해서 그랬나 봐. 아직 오늘은 날 세워 비명 지르는 소리들로 가득해. 낭만과 청춘이라고 말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발끝으로 절벽에 서있으니까.
저녁노을이 번지는 순간도 못 보고 벌써 밤이 세상을 덮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들은 점차 뒷걸음질 치고 있는 너의 발치에서 주워 건질 수 있으려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오늘은 건강했니. 오늘은 오래 감추고 있던 눈물 떨구는 일은 없었니. 오늘은 너에게 저녁을 곱게 지어 먹였니. 오늘은. 오늘은. 하나하나 물어가며 신발코를 두드려야지. 네 앞에 무릎 꿇고 다 잃어버렸던 운동화 끈을 예쁜 모양으로 매듭지어 묶어주고 네 가장 밑바닥에서 너를 올려다봐야지.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웃고 있을 사랑아. 사람아. 여전히 눈물겹게 아름다우시군요.
 그 무엇도 아닌 순간이 다가오면, 잠시 멈추어도, 그 길에서 벗어나도 괜찮아. 세상이 널 등진다면 별 수 있니. 내가 네 손 부여잡고 비문으로 가득 찬 이곳을 끝까지 달려나가야지. 가장 먼 곳에서 너를 보고 있어. 가까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작은 해바라기 한 송이 건네고 웃어 보이는 게 다여서.
선택은 언제나 각자의 몫으로. 별은 여전히 희고 우리는 영원한 꿈을 꾸겠지.
우리는 누군가와 시소를 타고 있어. 거기서 내려오는 건 나와 너의 몫이고. 내가 있는 장소가 흙바닥인지, 허공인지는. 두발을 모두 떼어야만 알겠지. 얼마나 나뒹굴고 멍청한 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안녕.

모민영 학우(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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