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너무하지 않소

안수진
편집부장
   이건 정말 너무한다, 라는 생각이 든 건 얼마 전이었다. 스터디를 하던 중이었나, 수업시간이었나 아무튼 그랬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강의실 앞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 ‘정숙’이라고 쓰인 팻말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입학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알고 있었다. 한창 수업중인 강의실 앞이나 연구실 앞을 떠들면서 지나가는 것쯤이야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라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복도에서 무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진짜 정말 너무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다. 이 정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불끈 쥐었던 주먹을 슬그머니 풀었다. 그 쯤 되니 화도 나지 않았다. 불만을 삼키고 다시 수업을 들었다. 소음은 끊이지 않았다.
   고3 수험생 시절 원서를 내러 학교에 온 적이 있다. 교복을 입고 쭈뼛쭈뼛 이 넓은 캠퍼스를 돌아다닐 때만 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길 건너는 것이 낯설었다. 처음 온 캠퍼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땐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길을 건너기에 그러려니 따라 건넜던 것 같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별 생각 없이 이쪽과 저쪽을 오갔다. 오고 있는 차는 세우면 그만이었다. 횡단보도는 있으나 마나였다.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 건 종종 학교로 견학을 오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을 보았을 때였다. 목에 이름표를 걸고 열 맞춰 걷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생각 없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깨달았다. 아차, 이건 좀 너무했다. 횡단보도 앞에 선 초등학생들이 손을 들고 건너려고 할 때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차차, 내가 좀 너무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한창 벚꽃이 피는 때면 조각공원은 막걸리를 즐기는 학우들로 넘쳐난다. 학우들의 낭만과 쓰레기의 양은 비례했다. 기분 좋게 술 취한 후 뒷정리 하는 것이 귀찮았을 것이다. 허물 벗듯 너부러진 쓰레기들이 넘쳐나자 학우들 사이에서도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필자가 아는 교수님들은 이미 혀를 끌끌 찼다. 아침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보기가 민망했다. 막걸리 병은 여전히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고 다른 쓰레기들도 그대로였다. 그맘때쯤 조각공원 쓰레기 문제가 충대신문 1면에 보도됐었다. 학우들은 그 신문을 돗자리 삼아 여전히 풍류를 즐겼다. 이건 진짜 너무했다.
   충대신문은 2년 전에 ‘비매너 어워드(1060호)’란 기사를 내보냈다. 아무렇지 않게 무단 횡단하는 학우들(1079호)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조각공원의 쓰레기 문제는 이미 여러 번 보도됐다. 그렇지만 덩치 큰 공동체의 행동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콧방귀도 안 뀌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어떤 교수님은 흥분하시면서 말하셨다. 우리학교 학생들 무단횡단을 너무 많이 한다고, 핸드폰 들여다보면서 도로를 가로지른다고, 이런 사소한 잘못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그런 학생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고. 그런 학생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는 말이 무서웠다. 그런 학생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그건 정말 너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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