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꿔 생각하기

안수진
문화부 기자
   천성부터 뚜렷한 주관이 없는 탓에 확고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봐도, 이쪽 말 저쪽 말이 다 맞는 것 같았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피해자들의 억울함도 가해자들의 뻔뻔함도 모두 이해가 갔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세상에 나쁜 놈은 없었다. 다 못되게 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라면서 나름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겼다. 적어도 나 배부르자고 남 굶기면 못 쓴다는 건 안다. 그래도 귀가 얇은 건 여전하다. 아직도 이해관계가 긴박하게 얽힌 사안들을 보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입장 바꿔 생각할 줄만 알고 판단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글로만 배웠는지 삶을 대하는 확고한 기준이 없다. 이런 태도 때문에 한두 번 곤란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잣대 없이 기웃거리는 태도는 특히 취재에 아주 방해가 된다. 이 입장 저 입장이 다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학보사 기자라는 명함을 내밀고 인터뷰를 하러 뛰어다니면서 몇 번씩 마음을 다잡는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뷰 내내 연신 고개만 끄덕거리게 된다. 취재를 마치고 빈 문서와 마주 앉아 한참동안 눈씨름을 해야 가닥이 잡힌다. 상황이 어쨌든 잘못은 잘못이라는 결단을 내리고 나야 겨우 기사를 써내려간다. 이렇게 한번 기사를 쓸 때마다 각자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써 놓고 나서도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다. 이게 다 역지사지를 글로만 배워서다.
   천성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리 눈을 부라리고 분석하려 노력해도 취재를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진다. 이번 취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충대병원에서 교직원들에 대한 진료비 감면 혜택을 폐지했다고 한다. 대학본부는 안 그래도 기성회계 수당 폐지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교직원의 인터뷰를 듣고 나올 때는 덩달아 힘이 쪽 빠졌다. 충대병원에서 감면 혜택을 폐지한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맨 처음 떠오른 교직원들의 표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건 좋은데 준비할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 그들의 목소리였다. 퍽 섭섭해하는 그들의 입장이 이해됐다.
   국립대병원 측에서는 교육부에서 내려온 지침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의 지원금이 병원의 재정 상태를 좌우하는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을 테다. 충남대 교직원들의 반발을 못들은 척 하고 속행하는 그들의 입장도 외면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 없는 학우들도 이해가 간다. 치열하고 냉정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그들에게 캠퍼스의 상황이 뒷전인 것도 그럴만하다. 좁은 취업의 문턱 앞에서 자꾸 독촉하는 눈치들 때문에 앞만 보고 숨차도록 뛰어야 하는 것이다. 왜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일에 이토록 관심이 없냐고 다그칠 수도 없다.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쓸 때 어김없이 빈문서에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마감시간이 다가오는 것보다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가 더 고민이다. 이게 다 역지사지를 글로만 배워서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의 나쁜 예인 필자는 이번 마감에도 고민만 하다 눈이 충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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