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을 찾으신다면

② 영화 ‘행복’의 실제 배경 하동마을에 가다

   ‘진정한 행복’의 기준은 언제나 모호하다. 우리는 행복한 미래를 위해 치열한 현재를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치열하게 보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에 그토록 바라던 행복한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담보로 걸고 있는 행복한 미래 또한 다시 치열한 현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행복의 딜레마에서 헤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곁에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끝나가 반팔을 입기도 긴팔을 입기도 애매한 요즘이다. 아버지가 태워주신 덕에 모처럼 편하게 경치를 즐기며 덕유산 기슭에 둘러 쌓인 하동마을을 찾았다. 더위가 한 풀 꺾이면서 숲의 푸른빛도 예전만큼의 생기를 잃었다. 지긋지긋한 더위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며 하동마을로 향했다.

잡풀로 우거진 은희의 집
   하동마을은 영화 속 희망 요양원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말기 암환자이다. 은희(임수정)처럼 폐에 병이 있어 8년씩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수(황정민)처럼 이제 막 병을 선고받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이곳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죽음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반면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뛰면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해맑게 말하는 은희는 폐의 60%를 잘라냈다. 현재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어떤 형식의 사랑도 달게 맞이한다.
   그들의 흔적이 있는 하동마을에 가려면 덕유산 능선에 난 고속도로를 꼬박 달려야 한다. 공기는 맑아서 좋다만 그래도 너무 멀다.  산을 통째로 넘으면 이윽고 하동마을이 보인다. 산 속에 잘 감춰져 있는 산골마을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평화로웠다.  아직 반팔을 입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영화가 처음 시작하는 계절도 이맘때쯤이다. 더위가 가신 하동마을에 영수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반팔에서 긴팔로 갈아입고 외투 걸치고 눈 내릴 때까지 하동마을의 슬프고 행복한 사랑은 진행된다.
   마을 옆에 난 2차선 도로를 지날 때는 푯말을 잘 봐야한다. 읍면리라는 행정구역이 생소해 이곳 저곳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하동 버스 정류장 맞은편이 은희, 영수가 머물렀던 하동마을이다. 혹시 길을 잃었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아무 마을이나 들어가 평상에 앉아계신 어르신들께 ‘영화 촬영지를 찾으러 왔는데…’라고 하면 친절히 알려주신다. 
   하동마을에 들어가니 영화에서 보았던 흔적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작은 마을을 샅샅히 뒤지다 보면 수풀에 뒤덮인 빨간 지붕 집이 보인다. 은희와 영수가 같이 살던 집이다. 은희가 매일같이 정돈했던 집은 관리가 안 돼 잡초만 무성했다.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었을 때 폐가라서 볼게 없을 거라고 했던 말이 스쳐지나갔다.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란 풀들을 헤집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영수가 서울로 떠난 후 혼자 집에 남은 은희는 고장난 수도꼭지에 화풀이를 했다. 그 수도꼭지 역시 잡초에 둘러싸여 있었다. 영수와 헤어지고 은희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다. 주인을 잃었다고 하소연하듯, 잡초가 삼켜버린 집은 결말을 암시하는 듯해 더욱 씁쓸했다.
하동 버스 정류장
   마을에서 나오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다. 헤어지기 직전, 술에 잔뜩 취한 영수를 은희가 부축하던 곳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 마을은 아직도 주인공들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영수는 은희를 버리고 다시 서울로 간다. 하지만 그곳의 생활은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깨닫는다. 함께 있을 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은희와의 생활이 그리운 영수는 결국 행복을 찾아 하동마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무리 여름이 더웠어도 막상 두꺼운 옷을 꺼내려니 아쉽다. 무성한 나뭇잎도, 여름 밤 잠 못들게 했던 개구리 울음소리도 어쩌면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하기 전에 현재를 사랑해야겠다. 영화 속 영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곁에 있는 행복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사진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