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반추하는 다시 읽기

출처. 책 읽는 소녀/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76)작
  올 초  ‘레 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 사상 최초로 500만 명의 국내 관객을 끌어모았다. 영화가 흥행하자 원작 소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판매까지 상승 가도를 달렸다. 실제로 도서 출판 민음사에서 출간한 『레 미제라블』 5권짜리 완역본은 10만 부 이상이 팔렸다.
 『레 미제라블』이 영화화 되면서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자 책을 다시 찾는 독자들도 증가했다. 민음사 홍보기획팀 조아름 씨는 “학창시절의 향수를 찾아 서점을 방문한 독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등생시절 읽었던 『레 미제라블』 축약본을 기억한 50세의 모 여성은 서점을 다시 찾아 책을 독파했다. 그녀는 3일 내내 아이들 밥 차려주는 것도 잊으며 책에 몰두했다고 한다.

  리리딩이 주는 세 가지 선물
  하루에도 몇 백 권씩 수많은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들도 다양하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미국 예일대 영문학과 교수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돼서까지 읽은 책을, 1년 동안 다시 읽는 이색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일상적인 다시 읽기, ‘리리딩(Re-reading)’을 통해 스팩스 교수는 무엇을 얻고 잃게 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리리딩은 안전감, 성찰, 깊이 읽기를 깨닫게 한다. 그녀는 “세 살짜리 독자는 친숙한 문장을 자주 들으면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단어 하나만 달라져도 그 책은 자기가 애지중지하던 그 책이 아니게 된다”라고 말했다.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경험은 아이들에게 의지할 곳을 잃게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안정적인 바람 때문이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도 이미 친숙해진 책을 다시 읽으므로써 예전에 느낀 기쁨과 즐거움을 안전하게 얻고 싶은 것이다. 
  과거에 읽었던 책을 시간이 흐른 후 리리딩하면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스팩스 교수는 “리리딩은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혹은 그대로인지를 선명히 마주 보게 한다”고 전했다. 같은 단어와 문장을 읽으면서 독자는 동시에 과거의 자아를 떠올린다. 이 순간 지난 경험이 되살아나고 자신의 달라진 정체성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책과 어떻게 반응하는지 깨닫는 시간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읽기를 통해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깊이 읽기 또한 가능해진다. 소설을 다시 읽을 경우 사건의 흐름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대사의 묘미나 인물의 관점, 묘사의 세밀함까지 볼 수 있다. 백원근 출판평론가는 “책을 반복해서 읽거나 혹은 시간차를 두고 읽게 되면 동일한 독자라도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분명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읽기를 통해 이전에 알지 못한 새로운 내용을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읽기를 통해 독자가 얻을 수 있는 변화는 문학, 지식, 정보, 실용 등 분야에 따라 다양하다. 가령 문학 도서를 다시 읽게 되면 주인공과 독자 사이에 교감하는 폭이 커지게 된다. 처음 읽을 때보다 독자는 훨씬 주인공에게 몰입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지식·정보 분야의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이전의 불명확했던 맥락이 보이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 같은 책을 다시 읽더라도 과거에 얻을 수 없던 지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진지한 책 읽기, 리리딩
  정보의 빠른 습득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다시 읽기 ‘리리딩’은 어쩌면 후퇴하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다. 백원근 씨는 “지금까지는 다독을 많이 권유하며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게 읽는 독서습관이 사회전반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독서습관은 지식 위주의 겉핥기식 독서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질이 아닌 양 위주로 많은 책을 읽으려는 자세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책 읽기를 조장해 독자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독자들이 얻는 사고의 확장과 깨달음이 오히려 올바른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리리딩은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풍부함을 더해준다. 과거에 읽은 작품으로 돌아가 우리는 다시 한 번 책 속에 담긴 글의 의미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또 한번 마주한 책은 난해한 생각과 씨름하게 하고 우아한 문체에 감동하며 설득력 있는 인물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책에서 얻게 되는 것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누적된 본인만의 경험에 의해 독자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리리딩이 독자 모두에게 작품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리리딩은 독자에게 지난 과거와 대화하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오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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