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부문 당선작

근세철학에서 시ㆍ공간의 문제

ⅰ. 서론

시ㆍ공간의 문제는 고대 그리이스에 원류를 가진 철학이 걸어온 역사속에서 일과 다의 문제ㆍ개별자와 보편자의 문제ㆍ절대성과 상대성의 문제등과 더불어 가장 난해하며 따라서 가장 많은 논의를 거친 문제로 꼽힌다.
문예 부흥 운동과 영국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급속히 발전한 근대 과학의 성과에 힘입어 이제 철학자들도 단지 사변적ㆍ관념적 방식에서 안주하던 안일함을 탈피하여 발전하는 과학을 우리의 경험과 사유에 모두 적용해 보는 실험적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시ㆍ공간의 문제도 제논(Zenon)의 역설에서 나오는 현실과 거리가 있는 사변이나 중세에 어거스틴(Augustins)이 표현한 바대로<누군가 내게 시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면 그것(시간)내에 대해 알 수 있으나 시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알 수 없다>는 식의 심정과 관계된 혹은 거룩한 시간과 속된 시간같이 신(Gatt)과 관계된 시간이해에서 탈피해서 가능한한 검증과 가설을 문제 해결에 이용하였다. 그와 같은 대표적 철학자가 바로 뉴톤(Newton), 라이브니쯔(Leibniz)이고 이들의 뒤를 이은 사람이 칸트(Kant)이다. 따라서 위의 세 철학자의 시간 이해를 살펴 봄으로써 우리는 중세 이후에 발전한 객관적(실험적)방식에 따른 사유함에 접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된다. 본론에서는 세 철학자(Newton,Lebniz)에 대한 칸트(Kant)의 해석을 살펴본다.

ⅱ. 본론

칸트의 시공간론

칸트(Kant)의 선험적 감송론(transzendentale-Asthetik)은 아름다운 예술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고 자극과 인상에 대한 학문인 -aesthesis-에서 유래한다. 이는 선험적 감성론의 과제가 판단력 비판에서와 같은 미의 탐구에 있지 않고 우리(감각)직관의 가능성의(선험적)논리적 제약의 탐구에 있으며 탐구 방향이 감각직관의 선험적 형식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에 이르는 과정인 감성과 오성 그리고 우리 인간에 있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심성(Gemiit)을 촉발(affizieren)함으로써 가능한 직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감성ㆍ오성의 구분

인간은 두개의 인식 기능을 가지며 하나는 감성. 다른 하나는 오성이다. 감성에 의하여 대상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므로 감성은 대상에 받아드리는 것이며 감성에 의해 사물은 표상화 되어지고 오성은 표상화된 대상(표상)을 사유한다. 따라서 감성은 대상에 의해 발현되어지는 수동적 개념인 반면 오성은 받아드리는 능동적 개념이다. 그러나 수동과 능동의 차이에 따라 양자의 우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경험은 두개의 인식기능(오성ㆍ감성)에 의해 구성되며 두개의 기능(개념)은 전혀 다른 기능을 하나 동일한 대상으로 갖고 있다. <감성없이 대상이 주어지지 않고 오성없이 대상이 사유될 수 없다. 내용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대상없는 직관은 맹목> 또는 <모든 사유는 직접적으로든지 혹은 간접적으로든지 우리에게 있어서 직관 즉 감성과 관계한다. 왜냐하면 다른 방식으로는 어떠한 대상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듯이 양자는 서로의 기능을 교환하거나 보충해줄 수 없으나 경험을 위해 협력하는 평등한 역할을 한다. 이때 또한 감성에 의해 주워진 것을 지각(wahrnehmung)이라 하고 사유를 해서 다시 정정을 가한 것을 엄밀한 휘적 경험(wissenschaftliche Erfabrung)이라 하며 양자가 경험을 이루는데는 동등하나 그 작용의 선ㆍ후에 있어서는 인간적 인식의 대상들이 그 밑에 있어서만 주어지는데 그 조건은 대상이 그 밑에서 사유되는 조건보다 선행(Voorgehen)하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순수 감성을 순수 오성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2) 경험직관과 순수직관

<직관은 인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또는 어떠한 수단에 의해서 직접 대상에 관계하는것을 즉, 모든 사유가 수단으로서 목표삼은 것이며 이는 직관이란 인식 활동의 최초의 단계로서 감성이 외계물에 직접으로 관계해서 즉 대상에 촉발되어서 성립되는 것을 뜻한다. 직관은 감각에 의해 대상에 관계하므로 경험적(empirisch)이며 후천적(aposteriori)인 직관의 내용(재료)과 감각에 의해 주어진 규정되지 않은 잡다한 대상인 현상을 정돈하는 선험적인 직관의 순수형식(empirische Anschauunig)으로 구성되며 직관의 내용은 경험적 직관이라 하고 직관의 형식은 순수직관(reine Anschauung)이라 한다. 이에 선험적 감성론은 직관의 형식인 순수 직관-이를 칸트(Kant)는 시ㆍ공간으로 규정하였다. -의 형식을 밝히는데 주력한다.
인간의 감성은 시ㆍ공간이라는 선천적 직관 형식을 통해 직관하며 따라서 인간의 직관적 표상은 모두 시ㆍ공간이라는 형식에 의해서 성립되어져 있다는데서 비공간적ㆍ비시간적인 경험적 직관은 존재할 수 없으며 시ㆍ공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속성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은 감성에 의해 대상을 우리밖에 있는 것으로서 다시 말해서 대상을 모두 공간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으로 표상하며 내감(inmerersinn)에 의해서 마음의 내적 상태를 모두 시간속에 있는 것으로 표상한다. 이러한 시ㆍ공간이 감성의 형식이며 결코 물(物)자체가 Ding ansich 아니라는 사시에서 경험적 직관에 의해 주어지는 대상 역시 물(物)자체가 아니고 오직 현상임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①공간은 외적 현상과 관계되는 어떠한 경험적 개념(empirischer Begriff)이 아니고 ②실재하는 본체 혹은 외적 실재물도 아니며 ③실재하는 사물간의 관계(Verhaltnis)도 아닌 ④오직 직관(Anschauung)을 구성하는 조건이며 형식이고 따라서 경험(Erfahrung)을 통해 후천적으로는 습득되어질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에 있어서의 직관이 대상을 받아들이는 감성적 직관인데 반해 공간은 외적인 잡다한 재료를 정돈하는 외적 현상의 형식이며 시간은 표상의 순서를 정돈하는 내적 현상의 형식이다.

3)공간개념

칸트(Kant)는 "공간은 어떤 사물자체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또는 사물상호관계에 있어서 즉 그 대상 자체에 속하는, 그리고 직관이 모든 주관적 제약을 배제한 경우에도 남는 어떠한 성질의 규정도 아니다" 공간의 실재성과 관계의 절대성도 부정한다. 또한 공간은 "형식은 모든 대상이 거기에 있어서 한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순수 직관으로서 일체의 경험에 앞서서 대상의 관계의 원리를 포함하며" 사물상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칸트(Kant)는 "공간이 모든 현실적 지각에 앞서서 선험적으로 심성에 주어져 있는 감성의 주관적 제약임을 설명하는 동시에 공간을 외감일반의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공간이 주관적 형식이긴 하나 또한 객관이 주관에 수용되는 원리로서 객관에 항상 촉발되어 질 상태에 있는 대상에 대한 주관의 관계 가능성을 의미"하며 이는 칸트(Kant)자신이 "인간적 입장에서 외적 직관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주관적 제약을 떠나 버리면 공간의 표상은 무의미하다"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시간ㆍ음량등은 물체의 직관이나 외부(빛ㆍ소리)에 의해 촉발되는 감각의 양상에 지나지 않으며 감각의 특수한 조직에 대해서 우연적으로 미친 작용에 불과하나 공간은 외적객관(Aussere Objekte)의 제약으로서 외적 객관의 현상, 혹은 직관에 필연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다.

4)시간개념

칸트(Kant)는 시간이 감성적 직관의 순수 형식으로서 경험적 개념이 아니고 모든 직관의 기초인 선험적 필연적 표상이라고 전제하여 첫째, "시간은 자기 자체로서 존립하는 것이 아니며 객관적 한정(Objektire Bestimmung)으로서 물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물의 직관의 모든 주관적 제약(Subjectiken Bestimmung)"이며 단지직관을 성립시키는 주관적 제약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달리 표현해 내적 직관의 형석(Iormder Innern Anschanung)으로서 대상에 선행적으로 표상되어지는 것이다.
둘째, 시간은 내감의 형식으로서 외적대상의 한정이나 형체(Gestalt)혹은 위치(Lage)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 상태에 있어서 표상의 관계를 한정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자신이나 내면적 상태가 그와 같이 그러한 직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현상적 성격에 있어서 "시간은 모든 모든 현상 일반(Eracheinungen berhaupt)의 선험적 제약이다"이는 우리들의 마음인 내적 현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외적 현상이 제약된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모든 외적현상은 공간속에 있고 공간의 선험적 관계에 의해서 한정되며 이에대해 모든 현상 일반은 시간내에 있고 필연적으로 시간의 관계속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은 직접적으로 내적현상의 제약이요, 간접적으로는 외적현상의 제약인 것이다.

5)시ㆍ공간의 관념성과 주관성

칸트(Kant)의 시 공간이 갖는 관념적 성질은 다음과 같다.
시ㆍ공간이란 결코 자체로서 어떤 사물의 속성이 아니며 실재하지 않는다. 대상으로서 외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나는 모든 것을 고려해 볼때 공간의 실재성(즉, 객관적ㆍ타당성)이 드러나지만 우리의 감각의 상태를 고려해 봄이 없이 이성 자체를 시공간이 드러날때 사물을 고찰함에 있어서의 공간의 관념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만약 모든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을 빼버리고 공간을, 사물을 근거 지우는 어떤 것으로써 제시할 때 공간은 무화(無化)한다. 또한 시간 역시 주관을 떠난 그 자체로는 무(Nichts)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현상(現象)에 대해서만 객관적 타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적 직관은 우리들이 대상으로부터 촉발지어 진다고 하는 한에 있어서 항상 감성적이다. 나아가서 직관은 감각경험의 주관적인 인간적 조건으로서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직관은 경험적으로 실재하나 칸트(Kant)가 말했듯이 선험적으로는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칸트(Kant)의 시공간에 대한 주관성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직관하는 사물은 자체로서 존재치 않고, 우리가 그 사물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처럼 그(사물의) 관계가 자체로서 얻어져야 하며 우리가 우리의 주관이나 감각의 주관적 성질(상태)을 지양(止楊)하면 모든 속성, 시공간에서의 대상의 모든 관계 즉, 시공간 자체는 사라진다.
시ㆍ공간에 대한 이러한 주관적 이해에 있어서 혹은 시ㆍ공간이 존재치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칸트(Kant)는 다음과 같이 나아간다. 즉 시ㆍ공간은 순수한것(res)이라기 보다는 단지 질서 지워진것(Ordines)이라는 점이다.

6)시공간의 상호관련성

시ㆍ공간의 상호 관련성은 양자중 어느 하나가 결여되면 우리의 대상 인식이 불가능해 진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외적 대상은 공간 안에 있는 것으로서, 선험적 공간의 형식없이는 외물이라고 하는 표상은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인식 주관은 선험적 공간 형식을 미리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공간을 통한 외적 현상도 역시 이것을 외적 현상이라고 표상하는 내감작용이므로 시간의 표상작용을 받아야 하며 우리들 자신의 내면적 상태에 있어서는 공간의 형식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시간을 통한 내감의 형식에 의해서 직관되어 지기도 한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결합은 운동을 통해서이다. 운동은 운동하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고 운동하는 것은 그것(주체)의 지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운동은 경험을 통해서 시간 내지는 공간속에서 보여지는 경험적 소여인 것이다.

뉴톤(Newton)의 시공간론

뉴톤(Newton)은 라이브니쯔(Lebniz)의 관념적ㆍ상대적 시ㆍ공간에 반대하여 "그 자체에 있어서 본성으로부터 외부의 어떠한 것과도 관계없이 일면적으로 흐르는 절대시간, 그 본성에 있어서 외부의 어떠한 것과도 관계없이 항상 동등한 절대공간"을 주장하고 운동 역시 이러한 절대장소에서 다른 절대장소로 옮아가는 한 물체의 진행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뉴톤(Newton)에 있어서 시ㆍ공간은 모든 실재를 포괄하는 영구적ㆍ무한한 자존적인 절대실재로 생각된 것이다. 이는 영국의 헤겔(Hegel)주의자 맥 타갈트(Mc Taggart)가 분리한 시간 이해의 첫번재 예와도 같은 맥락으로 표현된다. 즉 맥 타갈트(Mc Taggart)에 있어서 사건은 관계에 있어서 그 이전과 그 와 동일한 때와 그것 이후로 질서지워지고, 순서(B-Reihe)는 변화하지 않는 객관적인 시간 질서로 이해되며 따라서 실재적 시간 구조인 순서는 경험 의식과 독립해 있다는 것이다.
뉴톤(Newton)의 이론은 첫째 신학적 영향을 받아 공간의 여러 성질속에서 신적 실체의 특성을 발견하였다. "그(신)는 영원성과 무한성이 아니고 단지 영원하고 무한하다. 그는 지속이나 공간도 아니고 그러나 지속하며 현존한다. 그는 영원히 지속하고 어디서나 현존하며 항상 어디서나 존재함으로써 지속과 공간을 구성한다. 공가의 모든 미립자(paricle)는 항존하고 지속의 모든 불가분해한 계기(moment)는 어디에나 있다" 따라서 뉴톤(Newton)이론에서 시ㆍ공간은 존재론적으로 신의 현존에서 파생되어진다. 항상 어디서나 존재함으로써 시은 지속과 공간을 구성한다. 더욱이 뉴톤(Newton)의 형이상학적 도식에서 신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타당성을 설명하다면 시ㆍ공간은 그것들이 뉴톤(Newton)의 물리학은 수용했으나 그의 철학은 거부했던 후기 사상가들에게 적용되듯이 존재론적으로 구별되고 서로 분리되지는 않는다.
둘째, 뉴톤(Newton)은 모든 자연을 인식하기 위해서 그 근저에 물리적 실제 이상의 요소이며 물체가 어떻게 배열되어 움직여 지든간에 그 자체는 절대 정지 좌표로써 변동하고 위치는 모든 관측의 기준이 되는 변동되지 않는 절대적 시ㆍ공간을 주장했다. 17C에 공간은 내적 위치이나 공간 자체가 어떤 종류의 실체로서 인식되어졌던 18세기 후반에 이러한 공간의 의미는 상실되어 졌다. 뉴톤(Newton)에 있어 위치(Place0는 기본 개념으로써 항상 움직이지 않고 남아있고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을 구성하는 부분들이다. 위치들은 상황(situation)의 불변하는 질서를 구성한다. 즉 우치들은 그것들이 있는 그대로 있고 자체로서 움직이지 못하고, 위치(place)가 움직인다는 것은 모순이다. 시간의 질서가 부동하듯이 공간의 부분의 질서도 부동한다. 그러한 부분들이 그들의 위치 밖으로 움직였다고 가정하면 그것(공간)들은 공간들 자체로부터 움직여 질 것이다.
칸트(Kant)는 시ㆍ공간에 대한 세가지 개연성을 제시했다. 첫째, 시ㆍ공간은 실제 사물(real things), 즉 사물을 자체이거나 둘째, 실제 사물의 한정이거나 세째, 우리 감성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칸트(Kant)는 뉴톤(Newton)의 견해를 시간과 연계해서 시간이 혼자서 그리고 혼자 힘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면 시간은 실재적 대상(object)없이도 실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칸트(Kant)는 비록 사물속에서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가감각적 대상을 제거할 수 있고 순수 직관 속에서 또한 시간을 생각할 수 있다하더라도 시간(아마 공간까지도)을 시간속에서의 대상과 분리도지 않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따라서 칸트(Kant)는 객관적 시간의 맥 타갈트(Mc Taggarts)적 견해를 거의 가지지 않았고 시ㆍ공간은 우리 직관 능력의 두개의 형식이며 감각의 질서 원리이지 결코 외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에 칸트(Kant)는 뉴톤(Newton)의 견해를 단지 어떤 형이상학도 가정치 않은 물리학자의 견해로 취급한 듯하다.

라이브니쯔(Leibniz)의 시ㆍ공간론

라이브니쯔(Leibniz)는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시ㆍ공간을 다룬다. 공간은 사물의 질서 내지 관계라고 보았으며 이것은 데카르트(Descartes)의 연장적 실체개념이나 스피노자(Spinoze)의 신의 속성, 뉴톤(Newton)의 신의 지관(Sensorium Dei)등 절대적ㆍ실재적 공간 이론에 반대되는 것이다.
공간은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며 물(物)이 상관적(相關的)인 공간 관계에 있어서 존재하므로 공간은 연장(延長)의 기초이며 위치의 질서인 것이다. 즉, 공간은 가능적으로 공존하는 사물의 질서 내지 관계이다. 이는 공간이 현실적 내용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물체를 특정한 위치에 배치시키는 존재의 가능성이 질서하는 점을 나타내며, 또한 이러한 공간의 추상성은 수자체와 그 수에 의해 헤아려지는 사물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적, 구체적, 실재적인 것이 추상적, 관념적, 가능적인 것에 있어서 성립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즉 라이브니쯔(Leibniz)에 있어서 공간은 이미 연장적 실체도 아니고 일반적인 物(etre)도 아니며 이에 공가의 실재성은 부정되고, 동시에 추상적 가능적 공간의 관념성이 확립된다 시간에 대한 견해도 영국 헤결주의자인 맥타칼트(Mc Taggart)의 두번째 분석과 유사하며 그는 <사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따라 하나의 차례(A-Reihe)로 우리로부터 질서지워지며 질서로서의 시간은 주관적ㆍ상호 주관적이며 결코 실재적 구조는 아니다>고 말한다.
칸트(Kant)는 주로 라이브니츠(Leibniz)의 견해를 비판한다. 라이브니츠(Leibniz)의 견해에 의하면 시ㆍ공간은 현상의 관계이며 경험으로부터 추상되었고, 추상속에서 드러난 관계이며, 우리의 모든 감성은 단지 실재 사물의 혼합된 드러남(representation)이다. 현상은 사물들 자체와 동일하고, 또는 사물들 자체라기 보다는 그들이 나타나는 것으로써 뿐 아니라, 존재하는 그것들로써이다.
칸트(Kant)는 라이브니쯔(Libniz)의 견해를 단순화시키고 라이브니쯔(Leibniz)의 시ㆍ공간을 우리 직관(intuition)의 주관적 조건과 독립적인 사물의 속성으로 간주했다.
칸트(Kant)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주어진 사물들의 보편적 시ㆍ공 관계는 결코 사물들 자체에 기인하지 않고 우리의 감성(수용성)에 기인한다. 우리가 어떤 책상을 둥글게, 어떤 것은 사각형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사물들 자체가 공간적이지 않으면, 이러한 사물은 사각형이나 삼각형일 수 없으며 그 본성은 영원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사물들 자체는 우리 정신속에 변화되지 않은채 넘어오는 것이 아니다. 사물들 자체는 우리 정신속에 변화되지 않은채 넘어오는 것이 아니다. 사물들이 우리에게 보여질때 그것들은 우리 감성의 시ㆍ공간적 형식에 주체가 된다. 칸트(Kant)의 주된 주장은 감각적 현상의 주관성으로부터 밀접하게 감각적 현상의 주관성으로부터 밀접하게 감각적 현상에 관여된 시ㆍ공간이 형식을 취하는 감각현상은 부분적으로 정신의 본성에 의해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Kant)에 의하면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특성을 직관할 수 없으며 이는 곧 우리가 사물의 특성을 선천적으로 직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ㆍ공간이 사물들 자체의 특성이라 한다면 우리는 결코 수학의 필연적 확실성을 얻지 못하고 수학에서 발견된 진리가 실제 세계를 지탱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ⅲ.결론

뉴톤(Newton)의 절대적이고 진실하며 수학적이 시간 그리고 외부적 대상과 관계없이 항상 동일하게 남아있는 절대공간과 라이브니쯔(Leibniz)의 단지 어떤 상대적이며 연속의 질서인 시간과 또한 항존(Loexistence)의 질서인 공간에 모두 반대한다. 이에 칸트(Kant)는 시공간을 완전히 선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체로서 필연적인 순수 수학의 모든 법칙(공리)역시 인간의 정신적 재능에 선재(先在)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관찰할 때만 설명됨을 강조하나 그의 이론을 살펴보면 첫째, 시 공간을 개별들 사이의 관계나 특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점에서 뉴톤(Newton)과 일치하고 둘째, 라이브니쯔(Leibniz)가 시공간에는 어떠한 분해도 존재하지 않는데 그와 같은 것은 의식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한 바 대로 唯一同一한 공간개념과 無限으로서의 시간 표상에 일치하여 양자 모두 시공간의 불가 분해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칸트(Kant)의 시 공간이 현상이 어떻게 소멸하고 변하든 간에 자체로서 唯一同一하게 남아서 인식의 토대가 되는 직관의 형식으로 존재함은 뉴톤(Newton)의 영향에 따른 바 이고 또한 칸트(Kant)가 시 공간을 선험적 관념적 요소로 본것은 라이브니쯔(Leibniz)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칸트(Kant)의 시 공가에 대한 견해는 독자적인 구성에 의해 이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앞선 철학자들의 이론을 검토, 비판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이것은 근대에 이르러 진리 탐구의 방향이 보다 더 객관적이고 실험적인 쪽으로 나아감을 보여주는 지성사(知性史)의 한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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