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우리 경제야!'

  근대문학을 보면 죽을 병 걸린 사람에게 푸닥거리하는 장면이 흔히 등장한다. 예전에 우리민족은 씌인 귀신을 쫓아내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병은 병자의 온몸을 죽음으로 삼키기 마련이었다. 당시엔 병원 별로 없었고 의술도 발달하지 못했지만 보통사람(?)들은 설사 병원이 있다해도 형편이 못되었다.
  그나마 푸닥거리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기대었고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었다.
  푸닥거리하는 날은 음식도 푸짐히 장만되고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전국가적인 푸닥거리가 관심을 모은다.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측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10년만의 최고물가'의 눈총을 한몸에 받던 6공이 '목소리 큰 사림이 이긴다'는 시대조류를 타고 더 큰 목소리로 경제위기를 외치고 있다. '고물가'를 항의하던 시민들도 6공의 경제정책의 실책을 비판하던 학생들도 큰 목소리에 눌려 유구무언이다.
  경제위기의 주번으로 대다수 국민의 무분별한 과소비, 노동자의 파업, 수출부진, 무역적자가 나란히 도마위에 오르기 마련이다. 이에 새마을 운동의 망령이 벌떡 일어선듯 '30분 일더하기' '제자리찾기' '3대 10%더하기'ㆍㆍㆍ이 수많은 플래카드 속에서 보여지고.
  설비투자나 연구투자에 신경쓰지 않고 땅투기 이윤배가를 관행으로 하던 우리기업의 생리는 고부가가치의 이윤획득으로 질주하는 세계 자본주의체제재편속에서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몸부림속에서 다치는것은 누구인가.
  무역적자 퍼센테이지와 복잡한 도표들을 제시하며 국민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중의 일반적인 삶의 수준이 어느정도로 풍요하며 우리사회속에서 산업이 얼마만큼 건실하게 자리잡고 있느냐로 규정되어야 할 세계속에서의 우리 위치가 몇개의 기업의 성장과 침체로 판가름되는 것부터가 모순이며 그 모순부터 고쳐져야 할 것이다.
  경제를 위기랗고 규정하면서도 진정한 경제위기의 타개책을 찾지않고 노동자, 농민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며 큰 맘먹고 봄옷을 사려던 여공의 손끝마저 망설이게 한다.
  "경제야! 아이고 우리 경제야!"
  어느 코미디프로에서 어머니가 눈밭에서 맨몸으로 죽어가는 아들 경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경제위기에 대한 푸닥거리는 그만 두고 약한첩이라도 변변히 써야 죽어가는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으리라.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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