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무진기행, 김승옥, 문학동네, 2004
  이십 대의 나는 세상을 알고 싶었다. 부자의 삶과 가난한 자의 삶에 대해, 안정적인 삶과 불안정한 삶에 대해, 그리고 현실에 순응하는 자아와 순응하지 않는 자아에 대해. 그러나 궁금해만 할 뿐 추적하지 않았다. 리포트를 쓰고 친구를 만나는 내 세계 안에서는 바빴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로 나가면 장승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내게 김승옥의 소설은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다. 개인의 꿈을 허용하지 않는 관념과 사회, 답답한 질서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웃사이더의 욕망을 이십대에 이해한 그의 글은 충격이었다. 예로 김승옥은 스물세 살 때, 승진을 앞두고 무진으로 도피하는 ‘나’를 추적했다. 거기에는 ‘나’가 가면을 벗고 만나는 ‘외롭게 미쳐가는 것’, ‘유행가’, 그리고 ‘잠시 만나는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아내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급히 올라가고, 그런 ‘나’를 보내며 작가는 무진의 안개 속에 인간의 주체성을 영원히 감춘다.(『무진기행』의 줄거리).
  스물 두 살 때는 하숙집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뚫어지게 헤아렸다. 특히 판자촌에 살다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양옥집에 살게 된 남자의 삶에 주목했다. 김승옥은 그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양옥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 ‘창신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개새끼들이외다’라는 30년대식 표현의 낙서가 적혀 있던 그 방, 그리고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이 피아노가 둥둥거리는 집에서 생각하면 너무나 먼 곳에 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버스 하나를 타면 곧장 갈 수 있다는 평범한 가능성마저를 송두리째 말살시켜버리는 간격의 저쪽에 있었다. 일주일이란 보수를 치르고도 여전히 이 하얀 방에 대하여 서먹서먹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측량할 길 없는 간격을 내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갑자기 건너뛰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역사(力士)-
  그는 ‘천재작가’로 불린다. 무협지 작가였던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와 친구들은 이렇게 경악했다고 한다. “야, 이놈 문장 좀 봐라. 이게 도대체 인간이냐!”, “걔는 인(人)이 아니야. 누구한테서 배운 것도 아니고, 그냥 저절로 된 놈일 거야.” 작가의 실력이 경험한 세월에 비례한다는 명제를 거스르니, 과연 김승옥은 태어날 때부터 알이 아닌 새인 듯하다. 그러나 독자를 사고(思考)하게 만드는 그의 가장 큰 힘은 세상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그래서 동갑내기 시인 김지하가 투옥됐을 때 소설을 중단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절필을 했던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그의 세상은 사회와 타인의 삶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나와만 관계된 오늘은 내가 이해해야 할 세상의 편린(片鱗)일 뿐이다. 길에서 스쳐가는 타인의 삶은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
  소설가 신경숙은 스무 살에 김승옥의 소설을 만나 고정관념이 균열되는 경험을 했다. 우리도 김승옥이 추적한 세상을 한번쯤 경험해 볼 일이다.
 

박기령 대학원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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