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그런 내게 김승옥의 소설은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다. 개인의 꿈을 허용하지 않는 관념과 사회, 답답한 질서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웃사이더의 욕망을 이십대에 이해한 그의 글은 충격이었다. 예로 김승옥은 스물세 살 때, 승진을 앞두고 무진으로 도피하는 ‘나’를 추적했다. 거기에는 ‘나’가 가면을 벗고 만나는 ‘외롭게 미쳐가는 것’, ‘유행가’, 그리고 ‘잠시 만나는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아내의 전보를 받고 서울로 급히 올라가고, 그런 ‘나’를 보내며 작가는 무진의 안개 속에 인간의 주체성을 영원히 감춘다.(『무진기행』의 줄거리).
스물 두 살 때는 하숙집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뚫어지게 헤아렸다. 특히 판자촌에 살다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양옥집에 살게 된 남자의 삶에 주목했다. 김승옥은 그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양옥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 ‘창신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개새끼들이외다’라는 30년대식 표현의 낙서가 적혀 있던 그 방, 그리고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이 피아노가 둥둥거리는 집에서 생각하면 너무나 먼 곳에 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버스 하나를 타면 곧장 갈 수 있다는 평범한 가능성마저를 송두리째 말살시켜버리는 간격의 저쪽에 있었다. 일주일이란 보수를 치르고도 여전히 이 하얀 방에 대하여 서먹서먹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측량할 길 없는 간격을 내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갑자기 건너뛰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역사(力士)-
그는 ‘천재작가’로 불린다. 무협지 작가였던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와 친구들은 이렇게 경악했다고 한다. “야, 이놈 문장 좀 봐라. 이게 도대체 인간이냐!”, “걔는 인(人)이 아니야. 누구한테서 배운 것도 아니고, 그냥 저절로 된 놈일 거야.” 작가의 실력이 경험한 세월에 비례한다는 명제를 거스르니, 과연 김승옥은 태어날 때부터 알이 아닌 새인 듯하다. 그러나 독자를 사고(思考)하게 만드는 그의 가장 큰 힘은 세상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그래서 동갑내기 시인 김지하가 투옥됐을 때 소설을 중단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절필을 했던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그의 세상은 사회와 타인의 삶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나와만 관계된 오늘은 내가 이해해야 할 세상의 편린(片鱗)일 뿐이다. 길에서 스쳐가는 타인의 삶은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
소설가 신경숙은 스무 살에 김승옥의 소설을 만나 고정관념이 균열되는 경험을 했다. 우리도 김승옥이 추적한 세상을 한번쯤 경험해 볼 일이다.
박기령 대학원생기자
silverlove7@gmail.com
박기령 대학원생 기자
silverlove7@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