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사용철폐, 말 다듬기 남한 실패 북한 성공

  남북언어는 아직까지 방언정도의 차이

  언어는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은 상이한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남북분단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반 세기 가까이 살아왔지만 남북이 공히 같은 말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도 우리 민족의 순수성과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을 지향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남북언어의 동질성 회복의 중요성을 다시금 자각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혈통과 문화를 같이해도 언어가 상이하다면 우리는 그만큼 서로의 마음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1988년의 해금 조치 이후 북한의 언어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북한문헌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북한의 언어연구에 대한 평가나 북한언어의 실상을 알리는 연구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 글은 북한의 언어생활이 말 다듬기(국어순화)와 한글전용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근간으로 하여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다시금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남한의 언어생활에서 제기될 수 있는 반성할 점을 제시함으로써 남북언어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북한의 언어정책의 성격과 그 성과

  북한의 1949년도의 한자사용의 전면적인 폐지를 제외하면 분단 이후 6.25를 거치는 1953년까지만 해도 남한과 큰 차이없는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기반으로 한 언어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1954년 '조선어 철자법'을 바탕으로 언어정책을 펴면서 새로운 언어생활을 시도하게 되었으며(즉 두음법칙의 부정이나 사이시옷 대신 사이표(')의 사용 등), 1966년 김일성 교시에 따른 '조선말 규법집'의 등장과 더불어 이른바 북한의 표준어라 할 수 있는 '문화어'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장부호법, 표준발음법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져 오늘날 까지 이어진다.(사이표(')는 다시 없어진다).
  남북한의 언어생활이 두드러지게 차이를 내면서 언어의 이질화가 비로소 시작된 것은 우선 언어정책의 능률성의 차이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말해 한자 사용의 완전한 철폐와 대대적인 말다듬기 작업이 북한에서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남한에서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 북한의 말다듬기 작업이 어떠하였는가를 살펴보자. 우선 남한에서 사용하는 동일의미의 한자어가 북한에서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보자.
  인력(引力)→끌힘, 탄성력(彈性力)→튈힘, 평영(平泳)→가슴헤염, 급사(急死)→갑작죽음, 숙면(熟眠)→굳잠,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단벌가다, 애연가(愛燃家)→담배질군, 가발(假醱)→덧머리, 윤번(輪番)→돌림차례, 부표(浮標)→동동이, 우회로(迂廻路)→두름길, 정독(精讀)→다져읽기, 구설수(口舌數)→말밥, 홍시(紅枾)→물렁감, 야뇨증(夜尿症)→밤오줌증, 폐수(廢水)→버릴물, 피뢰침(避雷針)→벼락촉, 미소(微笑)→볼웃음, 가연성(可然性)→불탈성, 탈골(脫骨)→뼈어김, 충치(蟲齒)→삭은이, 채운(彩雲)→색구름, 산란<기>(産卵<期>)→알쓸이<철>, 결빙(結氷)→얼음얼이, 수면제(睡眠劑)→잠약, 판정승(判定勝)→점수이김, 열도(列島)→줄섬, 승무(僧舞)→중춤, 혈구(血球)→피알, 일조량(日照量)→해쪼임량.
  위에서 제시한 예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한자를 모를 경우 의미파악은 어려우나 고유어로 바꾼 경우는 한자를 몰라도 그 의미파악이 가의 가능하다.
  다음으로 생소하고 이질감이 한자어보다 더 큰 외래어(서양말)을 우리 고유어나 한자어보다 더 큰 외래어(서양말)을 우리 고유어나 한자어로 바꾼 경우를 몇개 보자.
  도너스→가락지빵, 아이스크림→얼음보숭, 캬라멜→기름사탕, 브래지어→가슴띠, 젖싸개, 바운딩(bounding)→곱침, 코너킥→모서리공, 서브→쳐넣기, 리시브→받아치기, 드라이브→감아치기, 돌려치기<탁구>, 원피스→나리옷, 테너→남성고음, 헤어드라이어→머리건조선풍기, 칼라(collar)→목달개, 나이프→밥상칼, 모자이크→쪽무이그림, 불도저→평토기, 드라이크이닝→화학빨래, 백미러(back mirror)→후시경.
  물론 북한에도 많은 외래어와 새로 만든 한자어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위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 말다듬기의 과정과 결과는 남한에서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하여 벌인 운동과 성과에 비하면 훨씬 돋보인다. 남한에서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거나 생소한 음성연쇄체인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일상생활에 사용한 것과 매우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언어의 자율적 변화를 존중하는 동시에 언중들의 자유로운 언어사용을 허용한다는 구실을 십분 받아들인다 해도 남한의 언어는 너무나 무질서 하리만큼 그 어휘적인 면에 있어서 혼탁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는 우리말의 말만들기 법칙에 따라 기저 어휘와 형태소를 밭앙으로 얼마든지 쉽고도 아름다운 말들이 많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일부 국민들이나 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양말의 홍수를 우리는 올바로 감내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교육과 한글전용

  북한에서는 1949년부터 한자사용과 교육을 전면적으로 폐지하였지만 수많은 한자어들에 대한 의미파악의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었던지 1968년부터 3,000자의 한자를 중학교에서 1,500자, 고등기술학교에서 500자, 그리고 대학교에서 100자 가르친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들이 한자교육(어밀한 의미에서 문법의 원리가 포하된 한문교육과 분리됨)을 시키는 것이 국한문 혼용표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현재도 신문을 포함한 모든 출판물의 표기를 한글전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문서적에서도 부득이 괄호 안에 표기하는 경우가 아니면 한자는 단 한자도 없다.
  한자교육의 당위성은 우리 어휘에서 차지하는 한자어의 비율과 관련시켜 볼 때 충분히 인정된다. 조상들이 우리들에게 씌워준 굴레라고나 할까. 국어 어휘의 절반 정도-물론 오늘날 전혀 사용하지도 않는 상당수의 한자어를 비율과 관련시켜 볼 때 충분히 인정된다. 조상들이 우리들에게 씌워준 굴레라고나 할까. 국어 어휘의 절반 정도-물론 오늘날 전혀 사용하지도 않는 상당수의 한자어를 사전에서 없애버리는 작업을 진행한다면 한자어는 국어사전에서 40푼정도도 되지 않겠지만-를 차지하는 한자어의 의미파악에 필요한 한자를 익히는 것은 어휘력을 늘리는 차원에서 보면 당연히 필요하다. 우리가 한자를 공부하는 것은 미국의 학생들이 자기들의 어휘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그들 영어의 근간을 이루는 라틴어나 희랍어 어간을 공부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한자교육이 꼭 한글전용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익혀야 할 교양 필수한자는 2,500자에서 3,000자정도면 된다고 본다. 이 정도면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어휘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지극히 어렵거나 궁벽진 한자로 구성된 한자어는 가급적 사용하지 말고 나아가 한자어들을 쉬운 고유어로 바꾸는 작업을 꾸준히 지속시킨다면 조선왕조 500년 지나면서 고유어가 점진적으로 한자어로 대체된 경우의 반대과정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언제부터 한자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소의 의견대립이 존재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소의 의견대립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국민학교때부터 한자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그 보다 더 어린 나이에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기까지 하다. 어느 의견이든 모두 소중히 개진되어 타당한 결론이 내려지면 이에따라 한자교육은 능률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

  남북의 언어의 이질성의 정도

  남북의 언어는 우리가 염려할 정도로 정말 크게 이질화되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남북의 언어는 아직까지만 해도 방언정도의 차이 이상이 아니라고 본다. 즉 서울사람들이 경상도나 제주도의 토박이들이 경상도나 제주도의 토박이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이질감 이상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KBS나 MBC에서 방영하는 북한의 텔레비젼방송을 들으면서 말소리의 억양이나 생소한 몇몇의 어휘외에는 그리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어휘에 있다. 언어의 변화를 가장 실감나게 해주는 것은 역시 어휘적인 면이다. 외국어의 영향이나 차용이 단어 층위에서 이루어지지 음운적인 면에서나 문법적인 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법이나 음운체계 상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휘체계에 있어서의 차이의 폭이 커지면 나중에는 필경 의사소통에서 크나큰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즉 북한의 문화어와 남한의 표준어가 일심동체가 되는데 따른 어려움이 상이한 어휘체계의 확대에 있는 것이다.

  고학력의 반문맹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말과 글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대중매체라 할 수 있는 일간신문을 포함한 모든 출판물은 빠른 시일내에 한글전용을 실시해야 한다. 한글전용을 잘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휘력 증진을 위해서 한자교육은 능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고학력의 반문맹자들을 더이상 양성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의 이질화를 막기위해 남과 북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많은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되겠지만 방송의 상호개방을 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언어의 자유왕래가 이루어져야 한다. 언어학자들의 학술적 교류가 밑받침이 되어 남북언어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맞춤법과 표준어의 공동제정및 국어사전의 공동편찬이 시행되어야 한다.


  정원수(국문ㆍ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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