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빈곤층도 과연 한 시장의 주요 소비자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의 몸이 뇌부터 발끝까지 불필요한 요소가 존재하지 않듯, 경제에서도 상류층부터 빈곤층까지 불필요한 소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껏 빈곤층은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처럼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는데 빈곤층의 가치를 진흙 속에서 발견한 사람이 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C. K. 프라할라드 교수다. 1998년 프라할라드 교수는 10년에 걸친 연구 결과 세계 인구의 60% 정도인 40억여명에 달하는 빈곤층의 시장 규모가 총 5조 달러(약 5,660조 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빈곤층도 충분히 매력적인 수요층이 될 수 있다”며 빈곤층 시장 BOP(Bottom Of Pyramid)란 개념을 세상밖에 내놓았다.
  프라할라드 교수의 연구 발표 이후 BOP 시장의 구매력이 기업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기업들이 BOP 시장에 뛰어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 문제가 심해지며 상류층의 수요가 한계를 보였지만 빈곤층 중에서 일부는 놀랍게도 소득 수준이 계속 향상했던 것이다. 실제로 인도의 한 농촌시장 소득계층 변화 자료를 보면 1995년에서 2009년까지 빈곤층 수치는 떨어지고 중산층의 수치가 올라갔다. 이런 시기적인 상황도 한몫을 하며 BOP 시장은 기회의 시장이 됐다.
  BOP 시장이 활력을 띠는 이유는 빈곤층들의 구매력이 개개인으로 보면 미미할지 몰라도 시장 전체로 보면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경영연구부문 정지혜 책임연구원은 “당장은 큰 수익을 올리기 어렵지만 저개발국 시장이 경제 성장과 함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해당 시장에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를 높여 엄청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며 “전 세계 기업들이 BOP 시장에 큰 기대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해외 기업들은 성공 가능성이 큰 BOP 시장을 저렴한 가격과 고객지향적 마케팅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후 해외기업들은 속속들이 성공신화를 썼는데 영국의 이동통신업체 보다폰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점을 정확히 찾아 성공한 전형적 사례다. 보다폰은 아프리카에 은행이 부족해 거래가 힘든 점을 이용해 휴대전화를 통한 전자화폐를 개발했다. 빈곤층을 위한 소액금융거래 시장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2005년 이후 아프리카 이동통신 시장은 연평균 50% 성장세를 보이고 보다폰의 시장점유율도 30%에 육박하며 큰 이익을 창출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몇 해 전부터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등 동남아 지역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지혜 책임연구원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지역의 자원을 개발하고 이들 지역에 필요한 인프라를 세워주는 부분에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며 “인도, 동남아시아 등 중산층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소비 시장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현대자동차의 사례다. 현대자동차는 1998년 인도에 공장을 준공해 생산을 시작한 이후 2년 만에 소형승용차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당시 인도 시장은 독일의 벤츠 자동차가 500대도 팔리지 않을 정도로 협소해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의 노후화된 소형차가 줄곧 1위를 차지했으나 현대자동차는 인도 소비자들이 낡은 모델의 품질과 디자인에 불만이 있음을 인지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런 불만들을 고려해 우수한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 인도의 기후와 도로사정에 맞춘 현지화 제품을 만들어 인도 자동차 시장점유율 1위를 탈환했고, 현재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현지화에 성공한 우리나라 기업은 현대자동차뿐만이 아니다. LG생활건강도 현재 베트남에서 화장품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이 진출했던 1997년 당시의 베트남은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부족해 판매에 어려움을 겼었다. 그래서 고객과의 적극적인 접점을 고민하던 끝에 한국의 방문판매 모델을 베트남에 적용했다. 베트남에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 역시 방문판매에 힘을 싣는 요인이었다. 그 결과 베트남 여성들은 일자리를 얻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방문판매에 앞장서며 판매 실적을 크게 신장시켜 지금까지 베트남 내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해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국내외 기업들이 BOP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빈곤층 소비자들. 이들에게 BOP 시장의 활성화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빈곤층은 경제, 생활 인프라 전반이 낙후되어 있지만 BOP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기본 인프라가 구축됐고 이들의 경제적 성장 여건 또한 개선되고 있다. 정지혜 책임연구원은 “아직 위험이 많은 시장이지만 선진국 소비시장이 점차 위축되고 있으며 새로운 성장 돌파구가 필요한 이 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이 시장을 통해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혜민 수습기자
dgr24@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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