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 안장 심의 기준, 신뢰할 수 있나

 
  매년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다가오면 국립묘지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국립묘지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한 분들을 안장하고 그 위공을 기리는 곳이다. 현재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과 4·19, 3·15, 5·18 국립민주묘지, 영천, 임실, 이천의 국립호국원 총 8개소의 국립묘지가 운영되고 있다. 국방부 소속인 국립서울현충원 외 나머지는 모두 국가보훈처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후손들에게 충의와 애국의 정신을 물려주는 동시에, 안장자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실천하는 곳이다.

  ‘인정할 수 없는’ 안장자 잠들어 있다?
  국립묘지 일부 안장자들의 안장 자격에 대한 논란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친일인명사전 등재자 76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으며, 여기에는 국가에 의해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14명과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서훈취소된 10명도 포함돼 있다. 5·18기념재단 주정립 상임연구원은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친일세력을 비롯한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친일인명사전 등재자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던 이유”라고 말했다.
  주 연구원은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파를 이장해야 마땅하다는 국민적 요구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은 과거사 청산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면 냉정하게 얘기할 때 그다지 높은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관련 규정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과거사 청산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를 문제로 꼽는다. 따라서 친일 인사 명단의 공신력 역시 매우 부족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한중 교수는 “친일인명사전 등재자들이 친일활동을 하였을 개연성은 크지만 사전편찬 작업을 국가적 확인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므로 친일인명사전 등재만을 가지고 이장 등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법무법인 더펌 정철승 변호사는 “현재는 친일행위자를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다는 규정 뿐 아니라 친일행위자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구분하는 기준마저 없다”며 “국가 요직에서의 공을 중요시하고 친일 행위는 묻어뒀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과거사 청산의 때를 놓치게 했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종보 변호사는 “친일파, 국가반란 범죄자 등이 순국선열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현실은 무척이나 분노스러운 일이다”라며 “국민 대부분이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찝찝한’ 안장자 심의 과정, 감사 결과 속내 드러내
  이러한 국립묘지의 안장 기준에 대한 논란은 비단 친일행위자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작전 도중 도주해 한국전쟁 최악의 패전을 기록한 고 유재흥 예비역 육군중장 외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고 안현태씨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는 작년 9월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 제 2묘역에 안장됐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고인에게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있지만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1997년 징역 2년 6월이 확정돼 복역한 전력이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지난 8월 국립대전현충원에 기습적으로 안장됐다. 5·18 구속부상자회 양희승 중앙회장은 “국립묘지에 5·18 항쟁 진압에 관련된 장군들의 안장을 적극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의 안장심의 결과 안장이 집행됐다”며 “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고인이 1997년 사면법에 따라 잔형 집행면제를 받고 1998년 복권되었으며 베트남 파병, 화랑무공훈장 수여, 전역 후에는 대통령 경호실장을 역임하는 등 생전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들을 고려해 심의, 의결했다고 밝혔다.
  5·18 구속 부상자회 양희승 중앙회장은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는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일조한 장군들이 안장돼 있으며, 안장심의위원회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5일 밝혀진 부적절한 심의 과정으로 논란은 새 국면을 맞았다. 감사원은 25일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 심의의결 실태와 관련한 국회 감사청구에 대해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국가보훈처 위원이 다른 정부 위원에게 찬성을 유도하는 전화를 하는 등 심의업무 처리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법은 위원회 운영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소속 기관의 장은 심의 안건에 대해 위원들의 의사 표시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은 심의위원들이 의사표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투명한 심의 보장돼도…미비한 법적 심의 기준
  현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4항 3호는 ‘죄를 범하여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5조 4항 5호에서는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 안현태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김종보 변호사는 “뇌물과 뇌물 방조에 해당하는 이 죄목은 특가법 제2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립묘지 안장대상제외규정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한중 교수 역시 “현행 대법원 판례를 토대로 법률적 관점에서 본다면 특별사면을 받게 되면 형 선고의 효력이 상실되므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4항 3호의 ‘죄를 범하여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자’에는 해당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면 복권되었다고 해도 형 선고의 사실 자체는 남아있기 때문에 이 역시 논란거리가 됐다. 정한중 교수는 “동조 동항 5호의 ‘그 밖에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에는 해당될 수 있기 때문에 안현태씨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국립묘지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하고 우리 사회의 일정한 지위 이상의 기득권을 유지한 이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게 한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송민진 기자
blossomydayz@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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