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알을 깨고 나온 감독, 다시 알을 두드리다!

  그는 천재적인 영화감독들의 외모의 ‘must have’라 할 수 있는 지저분한 턱수염이나 부스스한 머리카락과는 천성적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깔끔함과 단정함으로 무장한 그를 보고 혹여나 까다로운 사람이면 어쩌나하던 기자의 걱정은 기우였다. 오히려 그는 “점심은 먹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편의점에서 사온 하얀 찐빵을 기자에게 내민다. 이렇듯 작은 것도 세심하게 챙길 줄 아는 그는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공식 초청된 ‘줄탁동시’의 김경묵(27) 감독이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학교를 그만뒀다. 이는 성 정체성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제도권 교육이 잘 맞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그는 소속된 집단도 없고 그렇다고 뚜렷하게 하고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동안 무척 불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건 벌써 10년 전 얘기이다. 이제는 제도권 교육을 그만 둔 것에 대한 별다른 미련이나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한 때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 진학을 고민한 적도 있었으나 곧 포기했다. 대학 교육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될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남는 시간에 영화를 봤다.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영화를 좋아하고 즐겨보았다. 그는 외로울 때마다 영화를 통해 위로 받았다. 영화를 보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영화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스무 살이 돼서는 서울에서 영화 제작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첫 다큐멘터리 ‘나와 인형놀이’로 2004년에 데뷔해 그 해 벤쿠버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나와 인형놀이’는 어린 시절 인형놀이와 같이 남자답지 않은 놀이를 즐겨하던 김경묵 감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룬 영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특별한 구석이 있다. 초기작들에서는 한국사회의 성별문제,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를 자주 다뤄왔다. 그는 ‘나와 인형놀이’등의 초기작들에서 사회적 성별 문제를 다뤄오다가 현재는 탈북자, 이주 노동자, 게이, 레즈비언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그는 “아무래도 나부터가 성 소수자이고 소위 주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그들의 삶에 익숙한 탓에 영화로 표현해 내기 쉬웠던 것 같다.”며 “최근에는 성매매 여성, 집창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데뷔 7년 차인 그는 올해 12월 장편영화 ‘줄탁동시’를 개봉에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탈북자 1.5세대와 게이소년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겪는 절망을 다룬다. 그는 지난 9월과 10월에 이 영화로 베니스, 벤쿠버, 런던 영화제에 초청 됐다. ‘줄탁동시’는 작년 초에 촬영을 시작했고 같은 해 6월에 촬영이 끝났다. 하지만 제작비 부족으로 편집은 틈틈이 시간을 쪼개가며 직접 하는 바람에 올해 8월에서야 영화가 완성됐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이 상영되는 순간에도 아무런 영상사고가 나지만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는 감독. 그는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수 백 번을 보니까 설레기 보다는 영사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랐다.”며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 건 처음이라서 재밌었고 기립박수도 나오니까 더욱 기뻤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호평을 받으면 거만해질 법도 한데 그는 겸손하다. “대박나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대박나진 않을 거에요.”라며 짓궂게 받아쳤다. 대박이 나려면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가슴에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더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담아내는 김경묵 감독,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최민지 기자 minji905@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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