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와 위축에도 불구, 중요성은 그대로

  1970년대 콩코드 여객기를 만들던 영국의 루카스항공의 노동자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서 협동계획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그들은 과학기술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만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일반 대중과 사회는 소외시킨다고 생각했고 대안으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상품을 만들 권리’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그들은 값싼 의료기기, 도로·철도 겸용 차량, 연료가 적게 드는 엔진,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하이브리드 엔진의 기본 개념의 시초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의 협동계획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과학기술의 특권화를 극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오늘날 까지도 중요성을 갖는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과학기술 부문의 엘리트와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왔던 의사결정에서 이제는 시민들에 의한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는 보다 더 인간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발전을 위해, 정책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높여 잘못된 과학기술투자로 인한 엄청난 환경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구제역ㆍAI 시민조사단이 구제역 침출수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시민과학센터’를 필두로 시민 중심의 과학기술운동이 시작 됐다. 시민과학센터는 1997년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일반시민들이 과학기술 의사결정과정에 더 많이 참여하고, 그들의 필요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성명서를 내는 등의 활동을 했다. 현재는 참여연대에서 독립해 연구소 형태로 방향을 바꾸고 주로 소식지를 내고 내부적 세미나와 연구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단체로는 대전 카이스트 내의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있다. 시민참여연구센터는 연구능력이 있는 전문가로 구성이 된 연구 단체로 지역사회나 환경단체의 연구의뢰를 받고 연구를 진행하는 일을 주로 하며 과학상점이라고도 불린다.
  위의 두 단체는 과학기술 전반을 다루는 단체로 현재는 재정부족과 동력소진 등의 이유로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 오히려 최근에는 보건, 환경, 정보와 같이 활동영역과 성격이 뚜렷한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과학기술과 관련된 시민참여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간다. 예컨대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재생가능 에너지에서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에너지 전환’에서는 회원들이 돈을 모아 태양광발전소들을 세워 깨끗한 전기를 생산해 한국전력에 판매해 그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 등 모험적인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과학기술과 관련된 시민 참여 프로그램들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위축됐다. 시민단체나 민간 단위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 시민과학센터 김명진 부소장은 “예컨대 합의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신문에 전면 광고를 한번 내려고 해도 2천만 원이 든다. 이처럼 시민단체의 자력으로 재정적인 부분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광고는 후원으로 받거나 외부 후원이나 용역프로젝트를 받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돈 뿐만이 아니다. 김명진 부소장은 “합의회의를 진행하기 위해선 인력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한다. 패널을 선발하고, 패널에게 제공되는 자료도 제작해야하고, 예비모임도 준비해야하고, 3박 4일간 밤을 새우며 본회의도 진행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것을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에는 의회 산하의 기구들에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회의의 결과가 상당한 공신력을 얻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나 정책결정자들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등의 장점이 있다. 물론 국내에도 과학기술부 산하인 한국과학기술평가원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를 하고 시민 배심원 회의를 여는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기구이기 때문에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김명진 부소장은 “현 정부 들어서 사회적으로 현안이 되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을 주저한다. 구제역이나 원자력과 같은 중요 현안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올해는 뇌 과학 분야에 대한 논의를 한다고 들었다. 학술적으로는 재밌는 주제일 수도 있지만 정말 시급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는 안건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민단체에서 어렵게 프로그램을 내놓아도 시민들의 소극적인 참여로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시민단체 ‘에너지 전환’에서는 지난 6월부터 시민들에게 핵발전의 위험과 반생명성을 주제로 하는 강연회 ‘수요탈핵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다. 에너지전환의 송대원 간사는 “‘수요탈핵교실’의 홍보를 위해 나름대로 힘을 다하고 있지만 참여하는 일반 시민은 매회 열 명 안팎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정책에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져야하는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김명진 부소장은 “과학자들이 해당 분야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인 건 분명하지만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신선한 시각과 시도를 보탠다면 더 나은 결론이 나올 수 도 있다. 또 과학자들은 때로 자신이 전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데 시민들의 참여는 이러한 부분을 완화시켜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ji905@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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