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학생활의 마지막 1년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을 때처럼 언젠가는 끝이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과연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 계속 의문이 들었고 그 터널의 끝에 다다랐을 때 해야 할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에 시달렸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았지만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 너무나 많았고 그 무게는 실제보다 더 크게 내게 느껴졌다. 이처럼 세상이 내게 넘기 힘든 큰 벽으로 느껴졌을 때 나는 J가 보낸 이메일을 보았다. 
 J는 한국계 학생으로 동부의 명문 Y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내가 다니던 법과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법과대학 학생들은 석달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동안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학비도 마련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일반적인데, J의 문제는 그가 그 해 여름방학 동안 우리가 살던 세인트 루이스에서 멀리 떨어진 워싱턴의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데 있었다. 그는 이메일에서 “저는 이번 여름방학동안 워싱턴에 있는 ○법률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워싱턴까지 가는 비행기 요금, 보수가 나오기 전까지 워싱턴에서 지낼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저는 저의 법대 마지막 1년을 minimalist(최소주의자)로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침대와 책상, 의자, TV를 제외한 모든 나의 소지품을 판매하고자 합니다....여러분을 위한 맛있는 커피를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쓰고 있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는 성공한 이민가정 출신이어서 결코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군가에게 의존함으로써 새로운 짐을 하나 더 안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가볍게 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J의 이메일은 상당히 내게 충격을 주었고 그 후 나는 내 유학생활의 마지막 1년을 무언가를 버리고 놓는 연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버리거나 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절차였고 반드시 만나야 하는 이를 제외하고는 만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등 주변을 단순화하기 위해 애썼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내 고민과 혼란의 원인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너무나 많이 끌어안고 있었던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작은 손과 짧은 팔로 너무 많은 것을 안고 있어서 나는 그것들이 떨어질까 두려워 한 발자욱도 자유롭게 내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새 3년이 되었고 나는 내가 다시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고민에 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큰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는 두 손 가득한 작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행동이 정말이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여러분도 지금 두 손 가득 자갈을 잡은 채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육소영(법학과·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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