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한 여학생의 일기를 기사로 써 보았다.


금연구역에서 쫓긴 여학생

○월 △일 날씨 흐림

  사회대 ‘여성과 사회’수업이 끝나고 어제 레포트 때문에 밤을 새워서 그런지 졸리는 눈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음 수업을 위해 조금 자야겠다는 생각에 나의 발길은 여학생 휴게실로 옮겨졌다. 지난번 공대 친구가 여학생 휴게실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말이 생각났다. 공대같이 남학생이 많은 단대는 여학생 휴게실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니 슬픈 현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낡은 침대와 꼬질꼬질한 소파가 함께 있었는데, 요즘은 침대와 소파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수다 떠는 친구들한테 방해도 받지 않아 잠자리가 더 편해졌다. 친구들과 소파에 앉아 이야기하는 공간을 분리해 여학생 휴게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잠을 자다가 빗자루질 소리에 깼다. 이번에 사회대 부학생회장이 된 박혜진(정외·4)양이 여학생 휴게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여학생들 스스로가 우리들만의 공간이라는 필요성을 절감한 후에야 변화할 수 있다”며 “여학생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이 아닌 여학생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가 조성되어져야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를 설치해 더 편리한 공간이 된 여학생 휴게실이 단지 잠자는 공간, 수다 떠는 공간으로 전락해 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갔다.

  수업시작 전에 햇빛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담배를 피는 남학생 무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4번째 줄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펴는데, 앞에 있던 여학생 한 명이 가방에서 담배갑을 꺼내 화장실로 가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무심코‘어떻게 여자가’라는 생각이 내 나름대로 그녀의 사생활까지 결론을 지은 것 같아 왠지 미안해졌다.

  불현듯 창가에서 연신 담배를 뿜어대는 남학생들을 보았다. 평소 흡연구역을 보아도 눈에 띄는 것은 남학생뿐이었는데……. 여학생들의 편안한(?) 흡연구역은 화장실이었단 말인가. 냄새나는 한구석에서 다른 이의 눈치를 보며 즐기는 이와 상쾌한 공기와 뛰어난(?) 풍경을 겸비한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는 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평소에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나 역시 남녀차별을 하는 것 같아 참으로 우울한 하루였다.


여성으로 인식하기

○월 △일 날씨 맑음

  오늘 우리학교에서 K동아리의 주최로 여성영화제가 열렸다. 현수막을 보고 ‘한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고 얘기를 꺼냈지만 그런 곳은 어차피 뻔하다며 관심 없다고 등을 돌렸다.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영화제에 가지 못했다. 대신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여학생 소모임에 간다고 해서 수업이 끝나고 궁동의 D주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모임에 나온 사람은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선배들뿐이었다. 친목도모라는 명분으로 가볍게 술한잔이 오갔다. 자정을 알리는 시계를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드는 이 씁쓸한 기분은 뭐지.

  지난번 담배 피는 여학생을 보면서 생각했던 여성 문제들을 이야기해볼까 했는데 요즘 소모임의 분위기는 그저 ‘놀자’로 흐르는 것 같다. 나 역시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내 일 하기 바쁘니 할말도 없지만……. 다른 대학에 간 친구들은 여성 문화제 준비에 바쁘다고 하는 말이 스친다. 그곳에는 여총학생회도 있고 소모임도 활발해 여성 문제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된다는데 우리학교는 자치기구나 소모임이 다 남학생 위주로 굴러가니 여성의 이야기를 어디서 하나.

  솔직히 그동안 내가 우리학교의 여학생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여학생으로서의 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여학생 스스로의 떳떳한 목소리를 내보고 싶다.

  어쩌다 한번 모여서 선, 후배 친목도모랍시고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의미 없는 모임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하루였다.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좀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여학생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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