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개나리, 목련, 벚꽃 등이 만발한 교정에서 원숙한 봄을 만끽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강의한지 10년이 지났다. 술자리 참석할 때 뱉는 나의 건배사는 “다시 올 수 없는 이 순간을 위하여”이다.
 이따금 부르는 노래 중 하나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이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까...”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선다. 이 순간을 위하여 엄청나게 할 일도 없고, 가슴 저미는 첫사랑 추억도 없지만 나는 언제부터 다시 오지 않는 이 순간들의 지나감에 아쉬워했다.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세월흐름을 의식하는 것일까? 꽃들의 향취로 아롱진 이 아름다운 봄날이 곧 가기 때문일까?
모교이기도 한 충남대에 첫발을 디딜 때 말할 수 없는 감격과 설레임 그리고 비장한 각오가 있었다. 처음 몇 년은 최선을 다하였다고 말하기에 덜 부끄러운 것 같다.
그러나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까? 부끄럽고 초라하고 비통하기 그지없다. 생각해보 니 나는 사명감 가득한 선생도 대단한 연구업적이 있는 연구자도 대가 없이 정성을 제공한 봉사자도 아니었다. 그저 교육공무원의 신분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여 봄날을 즐긴 상춘객에 불과하였다. 늘 일방향 사고를 지녔고 남에 대한 배려와 이해에 인색하였다.
학생이나 대학입장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였으면서도 그렇지 않는 것처럼 포장하였다. 지난날들은 기계적이었고 나태하였고 수동적이었고 개인적이었다. 내가 한 것에 비하여 과분한 혜택을 받았지만 불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아하게 교수생활을 영위하니 이게 봄날이 아니던가. 정작 나는 목적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학생들은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봄날은 가고 있다. 봄날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봄날의 주체였다면 봄날에 대한 아쉬움이 이처럼 클까? 꿈결 같은 이 봄날 다시 익숙하지 않는 것을 대하듯 설레임으로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객이 아닌 주인으로…

 임학빈(경영 ·부교수)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