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위기속에 새로운 가능성 발견

  몇 안되는 젊은 영화인들의 절박한 선언이었던 ‘한국영화의 위기’는 88년 미국영화 지배를 기점으로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지배적인 시각이 되었다. 그러나 정말 ‘기적적으로’ 한국영화는 아직 살아있으며, 94년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던 한해였다. 94년의 영화계를 돌이켜보면서 ‘위기’와 ‘가능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한국영화의 지형도를 그려보도록 하자.
  94년을 빛낸 주연의 하나는 <공윤> (공연윤리위원회)이다. 프랑스 영화 ‘데미지’에 수입불가 판정을 내림으로써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명성을 높인바 있는 <공윤>은 1년 만에야 가위질한 그 영화의 개봉을 허가했다. 팀 버튼 감독의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역시 심의보류에 묶여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개봉에 실패했다. 한국영화라고 하여 예외일리 없다. 이적성 시비가 일었던 ‘태백산맥’의 무수정 통과와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관대한 처분으로 좀 나아졌는가 싶더니, 결국 박성배 감독의 ‘해적’을 난도질하는 본색을 드러냈다. ‘해적’의 경우는 사회 일각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지나친 폭력장면의 삭제 뿐 아니라, 경찰의 비리를 풍자하는 대사 몇마디까지도 잘려나간 ‘테러’였다. 폭력장면이 잘려나간 기묘한 폭력영화 ‘해적’을 만든 감독은 박성배가 아니라 <공윤>인 것이다.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 역시 <공윤>의 가위질을 피하지 못했다. 아예 ‘삘구’라는 영화는 심의를 거부했다(심의를 받지않은 영화는 상영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상의 검열제도는 합리적인 기준없이 자의적이고,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소비자 주권에 대한 도발이다.
  한국영화를 더욱 더 진창으로 밀어넣는 이런 제도적 장애를 없애고 영화진흥의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영화진흥법’은 국회파행속에서 다시금 해를 넘기고 말았다. 참고로 밝히자면 13대 국회에서 야권 3당을 통해 국회에 상정시키려 했던 ‘영화진흥법’은 민자당 창당으로 물거품이 되었던 것이다. <공윤>의 거취와 함께 영화진흥법의 시행을 지켜볼 일이다.
  여전히 암담한 제도와 조건 속에서도 94년의 한국영화는 질적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최고의 해였다. 2년째 연간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60여편에 머물고 있는데, 특히 94년에는 주목받는 영화와 감독이 많이 나왔다. 임의적이긴 하지만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써 94년의 한국영화를 살펴보자.
  첫번째 흐름은 한국사회에 특수성에 주목하고 사회현실을 담아내는 영화들이다. 80년대의 이런 영화들이 리얼리즘에 천착했다면 근래의 영화들은 형식적 실험에 대해 자유로운 입장을 보인다. 특히 주제들을 보자면 70, 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들의 충무로 진출이 두드러진다. 먼저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어린시절에 지닌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밑바닥에 깔면서 동시에 그로 인해 암살당한 충무로 한국영화의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최상의 미덕은 헐리우드에 대한 값싼 모방에 안주하는 한국영화계를 비판하고 반성하는데 있다. ‘헐리우드 키드’ 임병석의 죽음은 새로운 한국영화의 출발을 다짐하는 상징적 ‘제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전통적인 로드무비 양식을 변형하여 분단문제를 부각시킨 여균동 감동의 ‘세상밖으로’, 눈높이를 낮추어 80년대를 회고하는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을 이러한 흐름에 포함시킬 수 있다. 특히 이 두 감독은 신인이라는 면에서 더욱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또 다른 흐름은 기획력이 돋보이고 영화적 재미에 치중하는 일련의 작품들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보편주의’라고나 할까? 이런 흐름의 대표작은 신씨네의 ‘구미호’이다. 이 영화만큼 개봉 전에 많은 화제를 낳고 기대를 모았던 작품도 없는데, 이것이 모두 ‘기획’의 공이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특수효과를 한단계 높인 작품이다. ‘투캅스’에 이은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마누라 죽이기’와 함께 크리스마스 시즌에 외화와 경쟁하는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는 신세대라는 ‘상업적 담론’과 ‘스타시스템’을 결합시킨 중견 감독의 영화이다. ‘게임의 법칙’을 감독한 장현수 감독 역시 독특한 자신의 장르를 만들어가는 감독인데, 미국의 갱스터(갱영화) 장르와 홍콩의 소위 ‘홍콩 느와르’를 뒤섞어 놓은 이 영화가 ‘한국의 느와르’ 영화의 효시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끝으로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 두가지 흐름에 모두 속하는 이 영화는 작년 최고의 흥행작이며, 가장 많은 논란과 비판을 받았던 영화이다. 포르노의 예술, 상업주의와 작가주의 사이의 경계를 흐트리며 80년대의 진지함에 대한 조소와 90년대의 가벼움에 대한 풍자를 장선우 감독은 보여주었다.
  ‘쥬라기 공원’과 현대자동차의 부가가치를 비교한 브리핑이 청와대에서 이루어지고, 빌게이츠가 방한하여 ‘정보화 시대’를 유행시키고, 대기업이 영화계에 뛰어들고, CA-TV와 위성방송이 본격화되고 있다. 누구나 뉴미디어와 멀티미디어를 논하지만 여기에 적응하는 한국영화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대기업의 영화업 진출과 뉴미디어의 활성화가 어떤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지 확실치도 않다. 오랜 위기 속에서 모처럼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아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단, 한국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자신하건대 “이제 한국영화도 볼 만하다.”

  이대봉<서울영상집단ㆍ회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