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을 만나러 가는 길은 즐겁지 않았다. 필자 이전에 수많은 기자가 그를 다녀갔고, 내가 쓸 기사가 아니어도 수많은 인터뷰와 비평이 넘쳐났다. 또 그의 직설화법은 대중에게 환호받았지만 취재기술이 부족한 기자에게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위기의 한국사회에 대학생의 역할이 뭔지 논해보자”며 무작정 그를 찾았다. 걸음을 떼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유시민을 만나자 마음이 되려 편했다. 사람을 당기는 자신감과 맑은 눈망울. 보풀이 일어난 니트티, 원두를 직접 갈아 대접하는 자상함. ‘진보’와 ‘직설화법’으로만 축약하기에 숨겨진 진면목이 많았다.

 경북대에서 강의하시는 걸로 압니다. 어떤 수업인가요?
 ‘생활과 경제’라는 과목인데 교양수업이에요. 요즘 논란인 대운하, 청년실업, 공기업 민영화 등 우리 생활과 관계된 문제가 수업 내용이죠.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짜리 수업인데 학생들이 이메일로 질문하면 그걸로 토론하고 대답하고 그래요. 일주일에 3,40건의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오는데 참여도 적극적이고 수업분위기도 좋습니다.

 토론하고 질문 받다 보면 요즘 대학생들의 가치관이 드러날 텐데 교수님 대학시절과 격세지감을 느끼시나요?
 가치관은 다른 게 당연하죠 요즘 학생들은 워낙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잖아요. 그리고 대학의 역할이 달라져 우리 때 학생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고. 우리 대학교육이 예전처럼 엘리트 교육이 아니에요. 고교 졸업자 85%가 대학에 입학하는데 요즘 대학교육은 대중교육이죠. 학문연구가 아닌 사회진출을 위한 필수적인 교육단계. 대학 측은 그걸 인정하고 사회와 밀접한 실용교육을 해야 하는데, 학생들의 요구보다 선생님들이 가르치기 쉬운 커리큘럼으로만 강의하죠. 공급자 위주의 교육에서 일반학생들이 써먹을 수 있는 사회밀착적인 커리큘럼으로 변화해야 해요.
 동시에 평생 학문할 학생에게는 학문탐구의 필수적인 도구를 갈고 닦을 수 있는 여건도 제공해야하고. 예를 들어 영어, 제2외국어, 라틴어, 수학, 통계학 수업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리고 엘리트 고등교육은 대학원에서 이뤄져야하고요.

 교수님은 대학 때 어떤 학생이죠?
 78년도에 입학해 79년에 1월에 학과 배정을 하는데 경제학과에 지원했죠. 원래 법대에 가려고 했는데 엄두가 안 나더라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 유신말기였죠. 그런데 그때는 박대통령이 영원히 대통령 할 줄 알았어. 대통령이니 건강관리도 얼마나 잘하겠어요. 법대에 가면 졸업하고 박정희 대통령 아래서 판사, 변호사 할 텐데 자신없었어요. 그래서 법대 다음 커트라인이 높은 경제학과에 지원했죠. 집에 이유를 설명하기 좋은. 당시 한국은행이 최고의 직장이었으니까.
 공부한 기억은 별로 없어요. 야학하고, 돌 던지고 다니고, 시골에 봉사활동 다니고. 공부보다 데모 같은 데에 열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자기 생각을 말할 자유가 없고, 그것에 굴욕감을 느꼈으니까.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붙잡아가고,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죽여서 내다 버리고 이런 공포 분위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사회에 대들 것인가 아닌가’ 둘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학생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장난이죠. 미네르바 잡아가고, 촛불집회 나갔다고 벌금 때리고. 그땐 도서관 옥상에 올라가서 3분 고함지르면 징역3년!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사이버 모욕죄니, 국정원 개정이니 말하는데 물론 그거 다 나쁜 거지만 박정희 대통령에 비하면 장난 같은 거에요. 그땐 기관총에 박격포였으면 지금은 방망이 수준이야.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처럼 행동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참여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건가요?
 네. 촛불집회 때 의경들이 사람 때리는 일이 왕왕 있는데, 저런 정도가 아니라 거리에 나온 수 만 명을 다 때리고, 구속해버리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예전처럼 언론자유가 전혀 없고, 노동조합이나 정부기관이나 모두가 정체돼있다면 시민들은 모두 나설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사회문제에 대해 발벗고 고민할 농민회나 민주노총도 있고, 일부 양심 있는 언론이 역할을 해주고 있고. 그리고 대학생 60%가 이명박을 지지했어도 함께 뽑은 대통령인데, 대통령이 잘못하면 국민이 같이 책임져야지, 왜 대학생이 특히 책임져야해? 대학생들은 각자 먹고 살기도 바빠요.

       사람을 당기는 자신감과 맑은 눈망울. 보풀이 일어난 니트티, 원두를 직접 갈아
         대접하는 자상함. ‘진보’와 ‘직설화법’으로만 축약하기에 유시민은 숨겨진 진면
         목이 많았다.                                                                   사진 시민광장 제공


 그럼 2009년 현시점의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요?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거. 대학생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에요. 왜냐면 우리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니까. 그런데 세상에 너무 불의한 일들이 많아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양심에 거리낀다면 사회에 참여하는 거에요. 이건 동서고금의 모든 사회가 다 그랬죠. 사회 불의가 나의 행복한 삶과 양립할 수 있다면 그대로 사는 것이고. 즉,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에 달렸고 기준이나 정답은 없죠. 양심을 수치화 할 수 없으니까.
 대학생에게 제일 중요한건 자기 인생이에요. 앞으로 70년이나 살아야 하는데, 자기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대학생 때 할 일이죠. 능력이 큰 학생은 봉사나 투쟁을 하는데 시간을 쪼개 할애하는 거고, 자기 삶도 꾸리기가 벅찬 학생은 양심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하면 되는 것이고. 학교를 다니면서 어렵게 아르바이트하고, 그 돈으로 다음학기 등록금 내야하고 그런 학생한테 ‘왜 너의 행복만 위해 애쓰냐’고 비판할 수 있을까. 일반론적으로 ‘대학생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것은 없어요. 나는 유신체제에 운동하기보다 공부만 한 사람도 이해 해요. 그 사람의 개인 사정이 있고, 가치관이 있는 거니까. 세상은 늘 용기 있고 희생정신 강한 사람들의 기여만 필요해하진 않아요. 시기에 따라 이기적이긴 해도 선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기여가 필요하기도 해요. 중요한 것은 마음먹었을 때 동시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용기,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거, 개인의 행복함이죠.

 얼마 전 ‘88만원 세대’란 책이 큰 히트를 쳤습니다. 내용이 능력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이 연대해 사회 문제를 타개하자는 건데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랑 다르네요.
 사회문제는 개인이 타개할 수 없기 때문에 연대해서 타개하자는 말인데, 대학생들이 연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해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는 결코 단순하게 변화하지 않아요. 세상은 상당히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지역 등등... 그런데 그 중 하나가 다른 가치를 압도할 수 없습니다. 한 측면만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뀌지도 않고요.
 예컨대 지금 대학생들에게 취업이라는 주어진 십자가가 있는데, 원인은 경제구조 뿐만 아니라 인구구조도 있어요. 경제구조를 바꾼다 해도 인구구조 변경에는 수십 년이 필요합니다. 짱돌을 든다고 인구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는 거죠. 모든 가치가 윈윈Win-win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만 연대하지 말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연대해야 하는데... 그러나 모든 구성원이 유리한 해법을 찾는게 아직 힘들죠. 한국사회는 위기 경험이 IMF나 요즘 같은 대공황 빼고는 거의 없고, 갈등을 수습하는 방법도 공유된 게 없어요.

 그렇다면 지금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은 긍정적인 경험인가요?
 너무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있어요. 무개념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죠. 집을 지으려면 설계도가 있고, 자재를 모으고, 작업하는 사람을 모아야 하고. 그 사람들이 설계도에 대해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죠. 사회에 닥친 위기를 이기려면 사회가 가진 역량을 전부 가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일은 못하고 대통령 욕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어요. 엄청난 재앙이죠.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을 준비 중이시라던데 제목의 의미가 뭔가요?
 그냥 헌법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담았어요. 우리나라 헌법은 세계의 어느 국가의 헌법과 겨뤄도 뒤지지 않아요. 서방국가에서 내전이 일어나 수 만명이 죽고, 왕 목잘라 죽이고 엄청난 유혈의 강을 건너 쟁취한 헌법을 그대로 카피Copy해 들여 온 것이죠. 투쟁 없이 여성 참정권이 있고, 인권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에 ‘기본법’이 있게 됐고, 공장이 거의 없는데 ‘노동3권’이 있었죠. 그러나 그런 대가 없이 들여온 헌법에 대한 할부금을 우리는 계속 내고 있어요. 4.19나 5.18, 6월 항쟁이 그렇죠. 헌법을 우리 것으로 만드려면 후불로 할부금을 내야하는 거죠. 요즘도 그 할부금입니다.

 예소영 기자
 langue-parole@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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