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생각하며

 그들은 '폭도'가 아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광주 전역에는 서글픈 한숨과 분노, 짙은 향내속에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되살아난다. 내가 처음으로 광주를 접한것은 VTR 화면을 통해서였다.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얼굴, 철사줄에 묶인 손을 뒤로 하고 먼곳을 바라보던 청년들,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처참한 주검들, 남은 사람들의 피 맺힌 통곡, 민주화를 거스르려는 무리에 맞서 하나가 되어 지켜 내렸던 시민들...
  전두환정권은 그들을 '폭도'라고 불렀고, 그들의 행동을 반란으로 매도하여, 있을 수 없는 폭력으로 진압하려 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 '폭도'라 매도되었던 이들이 '민주시민'이 되었고, '사태'라고 불리운 사건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긴 했지만, 민주시민을 짓밟음으로 민주화에 역행하던 사람들은 아직 건재하고 있는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5.18은 과거에 있던 한 지역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볼 때 항상 돌아봐야 할 많은 피로 얻어낸 귀중한 지표이다. '데모', '억센 사람들', '파괴된 도시', '가까이해서는 안 될 도시'라는 치우친 눈으로 바라본 '광주'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고자 몇 자 투고해 본다.

남  신효국(기계공교ㆍ3)

 


 '모래시계'가 떠올려준 기억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난 광주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난 광주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 '모래시계'의 열풍이 있은 뒤 난 어렴풋이나마 80년의 그 치열했던 광주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었으며, 5월이 된 지금 유난히도 모래시계의 그 장면이 생생히 머리에 떠오른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그들이 왜 그렇게 공수부대에 의해 무참히 짖밟혀야 했는지. 분명 그때의 광주시민은 테러범도, 폭도도 아니었는데...
  중학교대 얼핏 본 청문회 장면도 생각이 난다. 모두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던 어른들의 모습
  '광주민주화운동'때 죽거나 다친 광주시민이 2천여명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나라끼리의 전쟁도 아니고, 같은 나라에서 같은 국민들까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망월동 묘지에 묻히 그분들은 언제쯤 한을 풀고 역사의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내년에는 광주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꼭 광주 망월동 묘지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  황인정(국문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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