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추구’ ‘순수한 열정’ 그동안 한국사회에서의 대학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징성들이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상실되어 가고 있다. 이른바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온갖 변화들은 정부당국의 정책이 원인이 돼 피할 수 없는 구조적인 갈등으로 표면화 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우려되는 점은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 아닌 취업학원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대학내에서 진행중인 학부제는 이러한 양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학 4년동안 학과전공에 대한 공부보다 취업준비로서의 외국어 공부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졸업장만이 가치를 가지는 대학생활의 일면은 여러가지 모습속에서 읽혀지고 있다.
  두번째, 80년대까지 형성되었던 대학문화의 사회전파 흐름이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사회의 상업문화가 대학을 지배하는 경향으로 반전되었다는 점 또한 대표적 기현상이다. 이른바 대학을 중심으로한 청바지 문화가 쇠퇴하고 대학생들이 향락산업의 주고객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돈없는 대학생의 ‘낭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 학문과 토론의 장으로서 컴퓨터 사용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학생들의 인식의 범위는 무한대로 커지고 서로 만나고 부대끼는 인적 교류의 장은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PC통신과 인터넷을 들 수 있다. 미국 대학의 교수가 써낸 논문을 쉽게 탐독할 수 있고, 익명의 자유토론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지만, 선후배 관계속에서 얻어지는 결속력과 얼굴을 마주한 열띤 토론속에서 발견하는 인간애가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네번째, 대학이 자유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시대변혁을 책임지는 상아탑으로서 기능한다는 논리에 담겨있는 헤게모니와 학문의 힘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일류정신’이 학문정신으로 대체되면서 시대의 아픔은 과거의 유산이며 ‘모래시계’세대는 좋은 도덕성의 귀감으로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다. 이것이 실천성을 강조해온 80년대 학문의 처절한 최후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상실되어가는 대학의 건강함’을 되찾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새로운 대학문화의 매개를 찾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모임을 꾸려감으로써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임이 제 2대학론이거나 학생회 강화론이거나 그것이 대학이라는 집단이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공동선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라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쟁력 강화’ ‘세계일류’의 상업논리를 대학 교육에 섣불리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특히 이러한 그릇된 논리로 대학교육구조를 변형시킨후 반작용이 생긴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그러나 현상적인 원인과 결과는 접어두고 대학이 추구해온 학문의 자유와 실천성을 재발굴하고 계발하는 것이야말로 당면과제이다. 변화가 후퇴와 발전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각인하고 후퇴의 길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1996년 가을, 한국사회의 대학생들이 사회변혁의 주인공 역할에서 취업학원에 다니는 ‘마마보이’로 전락할 것을 그 어느 누구도 바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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