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복지의 현주소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한 어머니의 가르침에 대한 열성을 이르는 말이다. 그만큼 인격을 수양하고 사회의 쓸모있는 인재를 길러내며 학문에의 욕구를 충족시키게 하는 올바른 인격체는 '교육환경'에 의해 좌우된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건전한 대학교육의 창달을 위해서는 그에 수반되는 내ㆍ외부의 여건 조성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복지의 올바른 향상과 정립을 위해 대학 복지란 무엇이며 현재 우리학교의 복지수준은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대학복지ㆍ환경이라면 넓게는 대학 전반의 교육여건 개선 분야를 포괄하겠지만 실제 학생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부분은 생활의 주 공간이 되는 도서관, 강의실, 연구실 등의 기본시설과 식당, 서점, 매점, 이발소, 보건진료소 등의 각종 편의시설, 그외에도 장학제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대학에서의 복지라함은 대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하는 진리탐구의 여건조성을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양적 팽창보다도 오히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들은 양적팽창에만 급급해 오다가 대학복지 및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기대 욕구가 높아지면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각 대학마다 총학생회 산하에 '학생복지위원회'등의 복지전담 기구가 신설되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져 복지정책에 적극 개입하거나 개선요구를 하게 됨에 따라 학교측과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추진주제가 학생들이라는데에서 오는 학교당국의 무관심, 예산부족 등으로 대학복지는 어느정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87년 중반이후 사회적으로 고양되기 시작한 민주화 분위기로 대학이 떠맡아야 했던 '정치투쟁'의 영역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고, 또한 학생운동의 지나친 정치일변도에 폭넓은 비판움직임이 일면서 소홀했던 학내 복지 및 환경에 관심이 돌려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학교당국은 학내복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함과 더불어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검토하게 되었고 학생들은 자신의 권리를 더욱 더 확대하며 강력하게 주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일게된 대학내의 복지 운동은 어느정도의 성과를 보았으나 아직까지도 예산부족 및 해당 행정기관의 이해부족 등으로 현재까지도 학내시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학교는 지난 80년대 초반에 보운캠퍼스에서 당시 대전시외인 유성으로 이전했다.
  이전당시 우리학교는 내부적으로는 캠퍼스에 우수한 시설의 문화공간 확보로 질적으로 향상된 다양한 대학 주변의 건전한 대학촌 형성으로 학생들이 분출하는 지성과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고 토로할 수 있는 진정한 대학인의 장을 형성해야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학교 학내외의 문화, 휴식공간은 한마디로 절대 부재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마땅한 공연장, 음악당, 강당등이 없어서 연중행사인 과별, 동아리의 문학제나 발표회, 전시회 등을 비좁고 낙후한 학생회관 로비에서 하거나 비싼 돈을 지불하고 대전시민회관, 문화회관 등을 빌려야 했다. 또한 서문 주변은 두, 세개의 무허가 분식점만 있을뿐 그린벨트로 묶여 삭막하기 그지없는 허허벌판이었으며 다른 주변도 그렇다할 연극 공연장이나 서점조차도 없는 상태였다. 이러한 생태에서 올바른 대학문화 풍토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진리탐구나 학문적 학습만이 대학생활의 전부는 아니라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우리학교는 1975년부터 1984년까지 있었던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85년에 학생들의 힘으로 총학생회가 다시 부활되면서 총학생회 산하에 인건복지위원회(이하 인복위)를 건설하였다. 인복위의 설립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정치에만 매몰되던 학생운동에서 이제는 학교내의 민주화 및 복지에 관심이 고조되던 것에 편승하여 학교의 면학분위기를 위해 복지 및 환경을 최대한 조성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던 새로운 학생운동의 차원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던 중 지난 91년도부터 경제적측면, 다시 말하면 단순한 수혜 및 후생적 차원에만 머물던 인복위를 해체하면서 세종대, 조선대 등을 본보기로 우리학교도 학원자주화 추진위원회(이하 학자추)를 건설하였다.
  짧은 역사를 가지고는 있지만 우리학교의 학자추는 그동안 노천극장, 각 학생회관의 냉ㆍ난방 시설 설치 및 가동, 학내 우체국 설치, 최근의 교시탑 준공 등의 학내 교육환경 및 복지를 이룩하였고 설문조사등의 학생들 의견 수렴을 통한 식당 질 개선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학내에만 머물던 교육환경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유성관광 특구 폐지에 대해 계속적인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인복위의 해체이후 공동체적 생활의 장 실현을 위한 학자운동은 아직까지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산부족 및 학교 당국의 무관심 등도 문제가 되지만 학생들의 무관심이 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이 꼭 해내겠다고 약속하던 학생회의 공약들이 일회성에 머물고 한해에 이루기 힘든 사업들의 이월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좀 더 발전적으로 교육환경에 대한 교육기자재 확충 및 어학실습, 전산실습 등에 대한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제고하여 학생들의 주인된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
  '교직원 및 학생의 일상생활에 대한 편의를 제공하고 소비보호를 도모하기 위한 사업을 행하여 조합원의 복리를 증진함으로써 교육조건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79년 9월 28일 학무회의에서 소비자 협동조합(이하 소협)이 기성회비 2천만원으로 학교당국에 의해 처음 설립되었다. 이후 1980년 3월 제1학생회관, 84년 9월 제2학생회관, 93년 제3학생회관 등을 개관, 식당과 매점등을 운영하였다. 즉 소협은 설립이후 지금까지 조합원에게 유리한 후생시설을 설치하여 이용에 공급하게 하며 생활 개선 및 문화향상을 위해 어느정도의 공헌을 하여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학교의 소협은 '자주적인 생활 공동체 건설'보다는 단순한 '수혜적 복지, 서비스 제공'차원에만 머물러 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소비의 주체인 교수, 교직원, 학생의 의견이 올바르게 반영되지 못하고 현상유지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기술적 어려움, 예산부족등의 기본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나, 면학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 마련이라는 관점에서 더욱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최근 전국적으로 관심이 일고 있는 '생활협동조합'에 대하여 우리학교도 충분한 검토를 통해 지금 현재의 소협을 탈피하여 사회와의 인적, 물적 교류까지도 확대되는 진정한 생활 공동체의 장을 열어야 할 때이다.
  우리학교는 1977년 9월 공업교육대 1호관 착공을 시공으로 하여 84년 2월 교육대학원을 끝으로 보운캠퍼스에서 대덕캠퍼스로의 이전 사업을 완료했다. 보운에에서 대덕으로의 이전시기인 80년대의 우리학교는 신입생 모집 정원이 3천명을 넘어섰고 7개 단과대학(원)의 증과, 증원이 이루어졌다. 급격히 늘어난 대학인구로 인하여 캠퍼스 과밀화, 시설부족, 교수부족등의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대한 방편으로 겸임교수 채용, 대학발전기금 조성사업 전개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40여년의 역사동안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고 할수는 있겠지만 단지 건물 늘리기식, 학생수 늘리기식이 아니었나 한다. 현재 1952년 학교 설립 당시에 비해 학생수는 60배가 늘어난 반면 교수수는 20배만 증가했을 뿐이다. 이제는 단지 양적성장만이 아닌 이에 걸맞는 복지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며 거기에 대한 목소리들이 거세어지고 있다. 이러한 복지문제는 학교, 학생이 공동참여하는 협의회 형식이나 협동조합 형태를 통해 개선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다.
  올해로 우리학교는 개교 43주년을 맞았다. 아직도 부족한 강의실 및 학생자치시설 등으로 많은 학생들이 불편을 겪고 있으며 관광 특구속에 대학가는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고 있다. 대학이라는 존재의 특성상 획기적인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은 어려우나 대학복지가 배타적 권리를 향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부분의 이상과 역할에 걸맞는 여건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다 많은 복지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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