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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맞물린 '반응'과 '저항'의 축제대동제, 30여년의 발자취를 되돌아 본다
박은신 기자 | 승인 1995.05.29 00:00|(746호)

 "주점을 하되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명분이 뚜렷한 과나 동아리에 한해서'라는 전제를 붙이고, 예전의 추첨형식이 아닌,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뒤 타당한 이유가 있는 단체에 한해서 주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줄 계획입니다.
 부총학생회장 김영덕(건축공ㆍ4)군은 힘주어 말한다.
 작년 백마축전이 끝난뒤 캠퍼스 가득 차있었던 시큼한 막걸리 냄새며, 산처럼 쌓인 음식물 쓰레기,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비닐봉지등을 떠올려 볼때 이 주장은 명백한 타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소비ㆍ향락축제'의 명백한 잔해물들을 학내 곳곳이 남겨둔 채, 매년 축제는 막을 내렸고, 어느덧 이런 모습들이 학생들의 모습속에 정형화되어 버려 으례 축제라 하면 '먹고 놀고 즐기는 것', '이유있는 결강', '대낮에 얼굴이 뻘개져서 학교를 돌아다녀도 창피하지 않은 때'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버린지 오래다. 이렇듯 지금 우리의 축제는 '대동'이라는 허울좋은 가면을 쓴, 또다른 새동네의 모습을 캠퍼스에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제 또다시 우리의 타락한(?)화려한 축제가 개막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총학생회는 대동(大同)제를 생각하기에 바쁘고, 과나 동아리는 '어떻게 하면 주점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란 생각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축제(祝祭)를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고, 새내기들의 가슴은 또 다른 대학문화를 접한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다.
 우리학교의 축제는 64년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는 정부가 경재정책에 최대의 주안점을 둠에 따라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시기이고, 외국문화가 무분별하게 국내에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사회에 축제가 태동되었다. 이때의 축제는 카니발이 주축을 이룬것이었고, 주종을 이루었던 것은 '쌍쌍파티'라 할 수 있다-지금도 이 쌍쌍파티의 명맥은 이어져내려와 매년 축제때마다 '댄스파티'가 벌어진다.- 이 시대의 폐쇄된 사회에서 남녀학생들은 축제는 곧 쌍쌍파티라 여기게 되었고, 축제의 절정도 화려한 전야제라든가 체육대회가 되었다. 50년대 절대적 빈곤 상태를 서서히 벗어나면서 정부의 고도성장정책으로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화되면서 축제는 욕구나 불만을 무조건 표출해내는 "폐배적이고 소비지향적'인 통로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우리학교에서 있었던 행사를 보면 축전의 행사를 알리는 '법경 페스티발'을 선두로 축제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은 '불꽃놀이', 학생들의 솜씨를 전교생과 시민에게 선을 보이는 '보운 문학제'등이 있었다, 특이할 만한점은 '사제친목 바둑대회', '보운의 향연(가요제)', '여학생 음악감상회'등의 행사에는 학생이나 시민뿐 아니라, 교수님들이 많이 참석해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비록 이때의 축제는  하나된 주제의식아래 내용성을 가지고 일관되게 펼쳐지는 행사는 아니었으나, 분명 교수, 학생, 시민들 모두의 축제였고, 이들이 모두 하나로 어울리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대동'이란 의미에 한발 가까이 간 축제가 아니었나 싶다.
 70년대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축제는 '낭만'으로만 미화되어 대학의 생명이라 할 수있는 창의력을 상실하고 퇴폐적이고 소비지향성의 연장선에 머물렀다.
 84년 학원 자율화 조치가 취해지면서 우리학교도 85년 총학생회가 불활하게 된다. 그럼에 따라 이전 학도호국단 주최의 소수의 보고 듣기식 참여와 소비지향적이고 향락적이던 축제는 막을 내리고 민중을 주체로 하는 역사가 생성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역사의식 아래 '대동'이라는 의미를 축제에 결부시키게 된다. 이때부터 '다같이 화합한다'는 대동제의 본뜻에 맞추어 일반학생들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집단성을 갖는 행사들이 축제의 주를 이루게 된다. 줄다리기나 차전놀이 탈춤공연등 공동체놀이가 대동제에 성행함에 따라 파트너가 없으면 무의미하던 축제의 시대는 가고, 다함께 할 수 있는 자리로 변모해간다.
 매년 5ㆍ18광주 민주화 운동을 전후해서 펼쳐지는 대동제는 '투쟁'과 동떨어질 수 없었고, '개막전야제'가 끝난 후 학생들은 어깨에 어깨를 걸고 '호헌철폐'를 외치며 정문을 나서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학도 호국단 시절 주로 지하서클에 숨어서 학습을 하고, 사회과학서적에 몰두하느라 축제는 뒷전이던 소위 '운동권 학생'들이 이제는 축제의 중심이 되어 행사를 준비하고, 투쟁을 준비해 나가게 된 것이다. 또 90년도에는 "일만 육천 학우 하나되어 민자당을 분쇄하고, 민족민주의 새시대로 달려나가자"라는 기치아래 일천여명의 학생들이 민자당타도 권기대회를 갖고, 대전시내로 진출, 이날 시위과정에서 많은 부상자, 연행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때에는 축제일중, 무려 이틀동안이나 시위를 해 '데모 대동제'로 불려지기까지 했다. 이관훈(경영ㆍ4)군은 "80년대의 축제는 시위의 일상화에 끝에 치뤄지는 '정리'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 것이었다."라고 밝혀 그때의 분위기를 잘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대동제 행사중 5종경기에서는 노태우씨의 얼굴이 그려있는 허수아비에 화염병을 던지는 게임도 있어, 일반학우들에게는 어색한 모습으로까지 비춰지기도 했다.
 80년대의 축제에서는 60, 70년대의 소비지향적이고, 향락적인 행사는 막을 내렸으나 대중성을 획득하지 못한 운동권 학생들이 주축이된- 일반 학생들에겐 반감을 일으키키도 한 - 축제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준다.
 총학생회 주최로 축제가 치뤄지면서 어느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하게 되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중의 하나가 '주점의 난립'이다 해마다 이와관련해 '퇴폐ㆍ향락적 축제'를 지양하자는 것을 가장 큰 기치로 내걸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대동제의 '고질병'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캠퍼스에 주점이 있던 자리는 다음날 아침까지도 막거리 술냄새가 배어 나오고,  군데군데 토해놓은 음식물들은 눈살을 찌뿌리게까지 한다. 또 술꾼들의 힘자랑에 의해 학교 곳곳의 가로등이 깨지고, 주점을 차릴려고 강의실 곳곳에서 막 끌어온 의자나 책상들이 대동제가 끝난뒤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해 캠퍼스 곳곳을 방황하는등 학내기물파손도 만만치가 않다. 또 주점철거후 수북히 쌓인 쓰레기도 큰 골칫거리이다.
 이와 관련해 이관훈군은 "85년 이후의 대동제가 어우러지는 장은 마련했으나 무절제해질 수 있는 부분을 많이 안고 있다"라고 말해 주점난립의 심각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모습을 학생들 자체내에서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 '규찰대'이다. 대동제기간중 행사의 무질서함을 막고, 행사 후 어지럽힌 교정을 치루는등 나름대로의 대동제의 성숙함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20여명의 규찰대학생들이 1만8천 학우들이 어지럽혀 놓은 캠퍼스 곳곳을 청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점의 난립'과 더불어 또 하난 문제가 되는 것이 '물풍선 던지기', '담배이름 알아맞추기', '동전던지기'등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업주의, 향락주의, 도박성놀이가 성행한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들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대동제의 큰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이와 관련해 총학생회는 작년 50여개가 넘었던 주점을 대폭 줄여 30여개를 운영, 앞으로 점점 더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한다. 우리사회 전반의 건전한 문화를 이끄는 선두에 서야할 대학문화가 또 그것을 대표하는 대동제가 주점이나 향락적 놀이로 가득 찬다면 봄마다 가을마다 열리는 벚꽃제가 단풍놀이와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다행히도 이런 문제점들을 대학인은 스스로 조금씩 해결해나가고 있다. 이런 희망을 보여주는 한 예가 90년대 들어 대동제가 대학인들만의 축제가 아닌 지역주민과 연대해 '함께 즐기는 장'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80년대의 정치지향적, 소비향락적 대동제가 지속될 경우, 대학문화발전의 장애가 도니다는 진지한 인식아래 좀더 바람직한 대동제를 마련하자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실제로 93년 백마축전때에는 '교수ㆍ학새ㆍ교직원ㆍ동문ㆍ지역주민들이 함께하는 범충대인 한마당'이 벌어져 축제의 대상을 충대학생들에 국한시키지 않고 더 넓게 어울리는 계기를 삼았다.
 또 한가지 특이할만한 사항은 소외계층을 위한 행사가 늘었다는점일 것이다. 예전에는 주점운영후 생기는 수익금을 과운영비나 학생회활동비용으로 사용하는게 보통이었으나 요즘은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쓰는 일이 빈번하다. 고려대의 경우, 북부노동자회관과 월곡동 주민단체 협의회의 기금마련을 위해 대동제기간동안 민중연대주점을 열어 거기에서 생긴 수익금의 전부를 연대맺은 단체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이런 것은 각 단체의 활동을 돕기 위한 기금마련의 의미외에도 그들의 활동상황고 향후방향을 학생들과 함께 공유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더 뜻깊다고 할 수 있다.
 우리학교의 경우 지금까지만 해도 대동제기간 주점 참가를 허락할때 단순히 운에 의한 '추점'제도를 택했으나 이제는 그들의 목적과, 또 수익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가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받고,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주점을 내주는 형식을 취해야 함이 옳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해도 대동제는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난 '유토피아'적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러므로 80년대 투쟁의 일상화의 한 끝으로, 또 반드시 '투쟁'과 결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학생들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고, 또 강요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강의실 밖을 빠져나왔다는 그 책임감 없는 자유로 6, 70년대처럼 어떤 주제의식도 문제의식도 없이 한철 벗꽃놀이나 단풍놀이처럼 한번 즐기고 잊어버리는 그런 일회성행사가 되어서도 안된다.
 대동제는 분명 대학문화를 떳떳하게 대학 울타리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하고, 대학인이 모두 어울려야 함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과 '아래ㆍ위'없이 함께 하나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거기에 어떤 대학문화 특유의 -일반사회와는 다른- 건강함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일상에 찌들은 대학 밖 기성인들을 감동시켜 그들을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길을 제시해야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박은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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