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바다에서 건져내는 어민의 설움

  한려수도! 이 말은 수채화의 풍경으로나 적합한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남해안의 수려한 섬들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한려수도란 이름은 한반도의 남해에서 지워져 버릴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있다. 시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 예전과는 다른 심각한 적조현상. 이런 일들은 남해의 엄마품과 같이 포근한 자연환경과 어민들이 살아갈 터전을 앗아가 버릴 정도로 위험수위에 올라있다.
  남해는 무심코 지나치기엔 상처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맑고 푸른 바다위에 군데군데 이어진 검붉은 빛의 적조현상, 바위에 묻은 아직 씻겨지지 않은 기름때 등이 그 흔적이었다. 이런 표면적인 모습은 여객선이 지나가는 도중의 섬에서 배를 탄 여고생의 말에서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뱃시간 때문에 수업을 빠지고 집에 간다는 강미옥(17)양은 이번 피해에 대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랑 섬사람들도 피해 많이 입었어요. 양식장도 그렇구... 그래도 아빠랑 엄마는 고기잡으러 나가긴 나가요.” 라며 입술을 삐죽였지만 잃지 않은 미소속에서 풋풋함을 찾을 수 있었다. 노을이 불그레 깔릴 무렵 시프린스호가 침몰된 소리도의 앞에 있는 ‘안도’라는 섬에 도착했다.
  섬에 발을 딛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기름때가 묻어 수북이 쌓여 있는 오일펜스였다. 오일펜스를 뒤로하고 우리가 찾은 곳은 전남 여천군 안도리의 평범한 어민의 집이었다. 조그마한 국민학교와 중학교가 나란히 있고 해안가에 70여 가구가 자리잡은 전형적인 어촌이었다. 섬사람들은 이곳을 ‘이야포’라 부르고 있었다.
  이야포 어민인 황홍무(53)씨는 이번 사고에 대한 질문에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담배를 물면서 말했다. “난리도 아니었제. 뭐 이 근방 양식장은 모두 베려 버리고, 고기도 안 살고...” 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황씨는 기름유출의 직접적인 피해보다 간접적인 피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남해안 적조현상은 황씨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사실 기름유출로 인한 피해는 별거 아니제. 적조가 문제지. 작년 같으면 2, 3일이면 끝날 적조가 올해는 일주일도 넘고 있으니께. 적조가 바다표면서 부터 밑바닥까지 덮어 버렸으니께.”라며 간접피해의 심각함을 말했다. 요즘 이야포 주민들은 대부분 본래의 생계수단인 어로작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대신에 생계수단은 ‘갯닦이’라 부르는 해안의 자갈과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는 일이다. 이 일로 하루 일당 4, 5만원 받는 것이 전부인 생활로 바뀌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8시, 쌀쌀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을주민이 하나 둘씩 모였다. 기름에 말라 붙은 돌을 하나하나 유처리제에 넣는 김연수(59)씨는 기름유출사고전의 이야기를 했다. “예전 같으문 이 시간에 우리는 놀고 있제. 새벽 3시부터 늦게까지 고기잡고 아주메들은 오전에 고기 내다 팔고, 그러제.”라며 지금의 바뀐 생활이 어색한듯 말했다. 대여섯명씩 옹기종기 모여 기름묻은 돌을 닦던 도중 화제는 자연히 이번 사고로 입은 피해로 돌려졌다. 그리고 또 다른 간접피해가 이야깃거리고 올라왔다. 마을 주민인 김윤자(49)씨는 “기름 닦느라고 마을사람들이 다 골병들었제. 눈병, 피부병, 뭐 쑤시고 아프고 별의별 것들이 다 있다.”라며 기름 묻은 돌을 다시 집었다. 한 어민으로부터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후유증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을의 한 주민은 ‘갯닦이’ 작업 중 쓰러져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주민은 퇴원했지만 다시 쓰러져 입원하게 되었다. 이 말을 듣던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속이 상하셨던지 한마디 거들었다. “고기 다 직여부리고, 전부 다 직여부리고. 우리가 기름냄새를 얼마나 마셨소···. 하자만 우리는 보상을 줘도 닦아야해, 그거여.” 라는 말속에는 체념섞인 분노 반, 삶의 터전을 살리겠다는 책임 반이 섞여 있었다.
  바다가 맑아 청정해역으로 지정된 곳이 이제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 버린 것에 대해서도 어민들은 한마디 했다. “이 앞바다에서 전복이 얼마나 많이 나왔소. 그거 팔아다 수입도 좀 올리고···. 지금은 아녀. 전복이 있어도 다 죽어 버렸제. 고기 한마리 찾기 힘들어. ” 사고가 발생한지 두달이 지난 지금도 아직까지 정부측은 뚜렷한 대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사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호유해운측의 보상은 어민들이 입은 직접적인 피해의 고작 120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실질적인 보상에 있어서도 호유해운의 모기업인 LG그룹이 앞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석유를 수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측에서도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기름유출사고가 날때마다 어민들이 마냥 기름 묻은 돌을 닦는 ‘갯닦이’ 만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와 사고 책임회사는 피부병을 얻어 가면서까지 어민들이 기름 묻은 돌을 닦는 마음을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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