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유행이 아닌 시대정신의 반영

  불란서의 대문호 아나톨 프랑스는 다음과 같이 의복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였다. "만일 내가 죽은 후 100년이 지나서 다시 살아난다면, 그리고 그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단 한 권의 책만이 허용된다면 나는 주저없이 패션잡지를 선택할 것이다." 복식의 유행에는 한 사회의 생활양식, 가치관, 사상을 포함한 시대정신이 함축되어 있음을 이해한 문학가의 표현에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최후(?)의 창조물로 선택된 인간은 가장 조물주의 마음에 드는 피조물이라지만, 또한 가장 불만이 많은 성가신 존재일 수도 있겠다. 좀 더 아름다워 지려는 갈망은 끊임없는 변형과 개조를 일으켰으며, 끊임없이 바르고 덮고 부풀리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였다. 변형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조이고 찢고 칼집을 내는 고통도 기꺼이 감수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변형욕구에 의복과 장식은 필연적이면서도 매우 다행스러운 수단이었다.
  사고와 감정을 갖은 Homo Sapiens가 아프리카 내부에 출현한 것이 약 10만년 전이라고 믿어지며, 또한 최초의 의복 및 장식이 출현된 것도 약 10만년 전 이란 것을 고려하면 복식과 인간은 처음부터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한 개체이고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의복을 제2의 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타당하다.
  현대인은 복식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며 이들을 통하여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복식과 유행의 의미전달 기호는 맥락에 의존적이므로 각 시대에 따라 구체적 이해방법은 변하여 왔다.
  인간은 정체감을 공유하는 집합적 사회에 속해 있으며, 복식유행도 이 사회정체감의 집합적 일면이므로 유행의 변화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남과 다르게 치장하고 싶은 개성과 남을 모방하고 싶은 동조라는 양면성이 공존하기 때문에 역사의 맥락속에서 유행의 수레바퀴는 계속하여 구르게 될 것이다.
  역사상 가장 격심한 복식변혁은 아마도 Roma인들이 경험하였을 것이다. Roma제국이 멸망하기도 전에 Roma의 청소년들은 북방민족의 바지를 흉내냈었다고 한다. 로마인이 오랜세월 착용했던 치마형태의 draped garment에서 바지형태의 tailored garment로 변화되었을 때 그들의 민족적 자존심도 어느 정도 손상되지 않았을까? 그후 북방 야만인의 봉제의는 계속 퍼져나가 현재 지구촌의 가장 보편적인 의복으로 발전되었다.
  불란서인들은 혁명시기를 겪으며 혼란한 사회적 맥락에서 기존 의복규범을 무시한 incrogables(영어로 impossible)이 나타났다. 고슴도치와 같은 머리장식에 제멋대로의 의복을 착용한 이 젊은층의 Fad는 그후 200년 후에 미국 hippie들의 복식준거 모형이었다고 하니 그 형태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 민족은 일본통치 46년동안 일본풍의 복식을 거의 수용하지 않았다. 참으로 놀라운 민족정신이라고 사료된다. 복식의 일본화가 한국인의 정서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인식한 일본인들은 우선 한복을 서양의복으로 변화시키는 시도를 하였다. 첫단계로 학생교복을 한복에서 서양의복으로 바꾸도록한 조치에 대해 당시의 이화여전 학생들이 한복을 교복으로 고집한 사건은 기억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6ㆍ25 사변을 전후하여 우리의 복식문화도 구미복식 영향으로 부터 안전할 수 없었다. 지금은 명절이나 가족축제등 특별한 경우에만 예복으로서 우리 전통의복이 명맥을 유지하는 듯하다.
  1960년대 후반부 부터 남성복의 공작혁명은 복식유행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무채색 중심의 점잖은 남성의복에 공작새와 같이 화려한 색상을 첨가시키려는 디자이너의 의도와 남성들의 심리적 욕구가 일치하였다. 공작혁명은 여성의복의 남성화라는 반작용을 불러왔으며 궁극적으로는 남녀의복의 성차가 없어진 unisex의복을 출현시켰다. 의복에서 좁혀진 성역할의 차이는 사회 및 가정에서의 성역할의 차이도 좁히고 있는 듯하다. 복식유행보다 시대정신을 더 잘 보여주는 증거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90년대의 유행은 장소(place), 시간(time), 맥락(occasion)등에 얽매였던 복식규범을 무시한 것이 아닐까? 디자이너는 이것을 T.P.O.개념으로부터의 탈피라고 명명하였다. T.P.O.개념이 깨짐에 따라 뚜렷한 유행현상이 발견되지 않고, 여러가지 경향의 유행이 공존하는 혼란스러움과 유행주기가 극도로 단축되는 현상을 가져온 것 같다. 지난 여름의 유행이었던 배꼽티와 잠옷과 같은 외출복속에서 표현되는 message는 무엇일까? 또한 이러한 복식유행에 나타난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심사숙고 해야하지 않을까?

 

김재숙(의류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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