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유산인가, 시긴지 잔재인가

  금년은 해방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다 보니 해방에 관해서 이런저런 행사들이 많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역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 뾰족탑 철거가 아니었나 싶다. 해방되었다는 나라가 자기 민족을 말살하던 본산을 해방 50주년이나 되도록 간수해 온 것도 딱한 일인데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중앙청으로 사용해왔고 최근에는 건물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했으니 그 몰역사적 식견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해서 자기 민족을 말살하던 본부가 새나라의 심장부가 되었는가. 그것은 우리의 역대 정권이 국민의 지지와는 상관없던 군사독재정권이었던 데다가 더 중요한 것은 친일파들이었다는 점이다. 역대의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고위직은 물론이고 군수뇌부와 경찰수뇌부, 장관과 국회의원, 대법관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을 담당했던 대주교, 국사편찬위원장들  중에서도 친일파의 대열에 낀 사람들이 있었으니 누군가 이 나라를 일컬어 친일파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식민지 시절에 일제의 수족이 되어 우리 민족 말살에 앞장섰던 자들이 자칭 새나라의 지도층이 되었지만 그 버릇 그 사상이 어디로 갈 것인가. 결국 민족을 말살하던 그 자리 그 건물에서 그 인물들이 간판만 바꿔 단체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배운 도둑질을 재탕해 먹은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벌어지던 일이 중앙청에서 똑같이 벌어진 채 50년을 내려왔으니 구천을 떠돌던 수많은 원혼들은 어디에서 그 위로를 구할까 걱정이다.
  이 중앙청 건물을 헌다고 하니까 갑자기 전국에서 여러가지 견해가 비등했다. 의견이 많기도 한데 그 중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나쁜 것도 역사의 교훈이니까 그냥 두고 되새기자는 의견이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면 성수대교도 교훈이고 삼풍백화점도 교훈이니까 그대로 두는게 어떨까. 더 나아가서 지존파의 살인현장도 보존해 두는게 좋지 않을까. 나쁜 것은 처벌하고 없애는 것이 교훈이요, 좋은 것은 보존ㆍ장려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똑같이 보존된다면 무엇으로 선악을 가리고 기준을 세워갈 것인가. 나쁜 것을 없애는 것이 바로 역사의 가르침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건물 몇 채만 없앤다고 식민지 찌꺼기가 없어지고 사회가 밝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식민지 찌꺼기는 찌꺼기가 아니라 우리 몸뚱이가 되어 그대로 살아있으니 문제다. 우리 사회구조가 식민지 유산이요, 민족분단이 식민지 유산이요, 우리 정신상태와 사고방식이 식민지 찌꺼기요, 우리가 지금 쓰는 문화니 학문들이 식민지 유산이요, 자칭 지도층 인맥들이 식민지 유산이니 식민지 유산이 아닌 것이 이 사회에 얼마나 되는지, 아니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둔 채 어마어마한 미래의 청사진을 내건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결국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어있는 식민지 유산을 처리해 내는 시발점이 될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세상 일은 모두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 찌꺼기를 거르는 작업도 그 인간들을 심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친일파들을 심판하는 인명사전을 편찬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 일은 아마도 오늘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김봉우<민족문제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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