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성 고려, 자율적 결정

  기존 학과통합으로 소위 학부제 운영이 최근 대학가에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적법한 절차와 논의없이 이루어지는 획일적 학부제 지향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
  교육부를 위시한 정부당국은 그간 1)복수전공이수 등으로 대학의 경쟁력 강화 2)학과통합을 통한 지원인력의 효율화 3)관련 학문의 학제간 연구 및 공동연구의 확대 등의 장점을 들어 학과통합 필요성을 역설하여 왔고 '학과통합 실적을 기준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사실상 강력한 통합정책의 의지를 표명하여 왔다. 재정지원에 관한 의사표시는 많은 국내 사립대학의 자발적(?) 통합을 유인하였고, 결국 국가의 행정 및 재정의 사정거리에 있는 국립대학들도 타율적 개혁에 동참하고 있다.
  학부제 운영의 반대입장에서 본인은 다음의 몇가지 절차적 부당성과 획일적 통합논리의 부당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통합이 필요한 분야가 있고 오히려 전문화의 확대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 따라서 학과통합을 통한 학부제 운영은 학문의 특수성과 사회의 요구 및 세계적인 흐름 등을 고려하여 결정될 문제이지 일정한 추진방향을 세우고 실적을 염두에둔 일사불란한 교육행정의 소산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학문별 고유성과 독자성을 유린한 채 정부주도형 개혁실적의 일환으로 강제화되는 통합정책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라기 보다는 규제에 의한 행정력 강화의 일면목이 아닐까?
  둘째, 진정한 통합 또는 학부화의 의사결정 주체는 정부나 대학당국이라기 보다는 학과 교수, 학생, 동문, 그리고 전공 졸업생을 채용해온 사회조직이다. 대학 당국은 학과통합에 관한 교육법상의 권리를 논하기 전에 통합을 고려중인 학과의 명실상부한 이해당사자 집단의 의사를 수렴하고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도록 여건을 마련하여야 한다. 따라서 학과통합을 결정한 대상학과에 "사탕 하나 더 주기식"의 유치한 유인책은 자율적인 합의과정의 도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셋째, 학문의 유사성과 교육과정의 중복성은 학과통합의 주요 이유인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기존 학과에서 분리되어온 신설학과들이 우선적인 통합대상이 된다. 많은 학과가 학과분리의 명분으로 이용한 경쟁력 강화는 오늘날 학과 재통합의 명분으로 다시 사용하고 있다.
  학문의 유사성과 중복성은 산술적인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정도의 많고 적음이 통합이유가 될 수 없다. 한 학과의 전공과목은 인접 학과의 학제간 균형을 위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기반학문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과정의 중복도는 학과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최소한의 전공필수 및 선택과목을 유지한 결과이지 학문의 유사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넷째, X대학이 통합하였고 Y대학이 통합하여 학부제를 운영하므로 우리도 해야한다는 식의 주장은 가장 경계하여야 할 반이성적 통합논리이다. 분리냐 통합이냐의 문제는 앞서 언급한 개별 학문의 특수성 뿐만 아니라 대학별 특수성도 고려하여야 한다. 대학에 따라 전문적 지식을 무장하여 사회에 진출시키는 것이 더욱 경쟁력을 높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다섯째, 통합정책의 관철에 역점을 두는 관계당국은 또한 고객지향적 대학운영을 역설하고 싶어한다. 이 문제는 대학의 고객이 누구인가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은 대학의 주체이자 또한 대학의 일차적 고객이다. 그들의 폭넓은 교육과 전문화된 교육의 기회를 균형있게 보장하여야 한다. 학부제 운영이 지나친 세분화를 막는데 있다고 주장한다면 기존 학과제에서의 교과과목 중복성을 왜 학부제 운영의 이유로 드는 것일까?
  또한 학부제 운영으로 특정 학과에 입학한 학생이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을 경우 현행 학과체제에서는 전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재의 입시제도와 입시지원 관행상 일면 타당성이 있으나 이러한 문제는 적어도 단과대학 내에서 일정 기준에 부합되는 학생의 전과를 허용하는 등 제도개선에 의하여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본인이 우려하는 것은 학부제 운영으로 정작 학생 자신이 필요한 과목이나 다소 어려워서 학점취득의 용이성에 의해 수강과목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어떤 과목의 학점취득이 쉽지 않을 정도의 난이도가 있으나 최소한의 전문화에는 꼭 필요하여 기존 학과체제에서 필수과목이었던 것이 학부제에서 선택으로 바뀌었다면 그 과목의 개설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대학의 이차 고객은 대학의 졸업생을 채용하는 기업 등의 사회조직이다. 과연 학부제 도입으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력양성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명쾌히 답변할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사회가 다양한 전문성을 요구하느냐 아니면 포괄적 지식을 원하느냐는 학과의 특수성에 관한 문제이지만 경상대학의 경우 대체로 후자에 가깝다. 말하자면 전문적 지식을 원하기 다는 그저 대학교육을 받을 그리고 소화할 정도의 머리를 요구하고 있다. 본인은 "대학이 컴퓨터와 영어만 똑바로 가르쳐 주면 기업구성원으로 필요한 지식은 사내교육 등의 이차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 모 대기업의 인사담당자의 최근 인터뷰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 인터뷰 기사는 전문 교육에 대한 사회인식과 교육의 이중투자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이 대학투자에 인색한 이유를 또한 짐작케 한다. 기업으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지원을 받는 Harbard Business School이 왜 세계적인 인재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이 시점에서 알아야 한다. 기업재교육의 기회 때문에 전문화된 대학교육의 필요성이 감소되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이차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되는 중소기업체의 경우 전문화된 대학교육의 의존도는 더욱 클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결론적으로 개별 학과 및 대학의 특수성과 미래지향적 사회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학과의 광범위한 이해당사자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자율적으로 학과 또는 학부제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임학빈(회계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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