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의 추억
  유년기 때 장마는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그 긴 비는 우산도 장화도 없는 어린 나에게 우산을 앞에 걱정스레 든 친구 어머니를 시끄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산과 가방을 주고 받는 모자의 모습은 미술 도구와 책가방이 전부인 나에게 부러움을 일으키는데 충분했다. 그날 그린 엄마 얼굴, 화첩을 가슴에 꼭 안고 집으로 열심히 뛰었다. 걱정스레 화첩을 펴니 엄마는 울고 있었다. 물감과 크레파스에 덕지덕지 엉겨붙은 눈물 방울, 난 다시 엄마를 웃게 만들었다. 아주 아주 흐뭇한 웃음으로…. 또 하나의 긴 비는 청소년기에 기회란 이름으로 날 다시 찾았다. 이민간 여자친구가 5년만에 한국에 왔다. 우리는 어스름이 땅거미로 깔릴쯤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에 갔다. 교실도 가보고 운동장 여기 저기를 걸으며 5년 전의 학교 모습을 떠올렸다. 그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던 깨끗한 얼굴들. 학교가 변한 만큼 우리 또한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는 등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학교와 같이 우리의 마음은 아무 걱정없이 편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긴 비에 잠시 개었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며 소나기가 내렸다. 우리는 스탠드에서 비를 피했다. 난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동과 황순원의 ‘소나기’의 소년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나의 유년기의 장마 얘기를 해 주었다.

 전승근(기계공학부ㆍ1)

 빨래걱정(?)
  일반적으로 장마를 말하자면 우산이 떠올려지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장마’하면 빨래가 마르지 않아 애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몇 해전 나는 내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에게서 영화를 보러 가자는 데이트(?) 신청을 받았었다.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는 신부님이었고 더욱이 ‘신부님’이라는 사실이 날 더욱 설레게 했다. 집에 오자마자 옷장을 모조리 뒤졌다. 아무래도 ‘뭘 입고 나가야 더 예쁠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찾아낸 옷. 엄마 몰래 혼자 빨래를 해서 빨래줄에 널었다. 약속은 이틀 뒤라 마르는데 여유가 있으리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빨래가 더 척척해져 있는 것이었다. 밤새 비가 온 것이다. 그래도 하루가 더 남았으니까…
  하지만 그 날 낮부터 내린 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뉴스에서는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덕분에 신부님과의 첫 데이트에, 다리미로 따뜻하게 데워진 옷을 입고 나가야 했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에도 그때를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애가 닳았던지….
  난 그 날 이후 장마철만 되면 나이든 사람처럼 빨래를 걱정하게 되어 버렸다.

박지연(사학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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