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회상

  가을이면 몸살을 앓는다.
  끝없이 걷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가 없다. 마음 내키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어디든지 가고 싶어진다.
  이런 나의 몸살은 78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먼나라 ‘독일’의 ‘뮌헨’ 그것도 자유로운 정신이 살아 숨쉰다는 ‘슈바빙’에서 완전한 이방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춘기때 단순히 책속의 주인공으로 동경했던 전혜린ㅡ그녀가 유학시절에 받았던 질문을 나 역시 무수히 받았다. “Woher kommen Sie”ㅡ“당신 어디에서 왔나요?”ㅡ라는.
  1977년 봄 나는 서울음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나의 대학생활은 남들처럼 단순한 해방감과 명문대학의 합격이라는 안도감이 전부는 아니었다. 어렸을때부터 꿈꾸던 독일 유학ㅡ나에게는 그것이 해결해야할 커다란 과제였다. 지금처럼 유학 자율화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권을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그토록 부정적이었던 주한 독일대사관, 외무부, 문교부, 문화공보부… 어느날 여권발급 하나가 떨어졌다.
  꿈과 설레임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는 18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런 내가 만난 독일생활은 상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과 언어부터 시작하여 한국에서 몰랐던 여러가지 장애요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움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봐도 눈물이 나고 한국에서 전화가 와도 서러워 울었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무렵, 나는 뮌헨의 ‘영국 공원’이라는 곳에 갔었다. 여기저기 낙엽이 뒹굴고 있었고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쳐갔다. 그렇게 외로움에 지쳐있는 나와는 달리 공원 곳곳에 둘 또는 여럿이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모습으로 그들속에 융화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독일에 간지 4개월만에 정리된 내 방황의 끝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6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어느덧 7년을 충남대학에 몸담고 있다.
  한장의 편지, 한마디의 따뜻한 대화가 간절히 필요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해줄 수 있는 한마디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가 가장 큰 가능성의 시기라는 것을…. 해 뜨기전에 가장 어둡다는 말도 있듯이 각종 시험준비, 취직준비 또는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여러분들에게 이 가을이 보다 알찬 계절이 되기를 바라며 가을날 내가 앓았던 몸살을 이젠 낙엽속에 묻어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교정에 가득한 여러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ㅡ

임해경(관현ㆍ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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