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사고’ 기초한 경제발전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주로 소득, 수명, 주거 등과 같은 삶의 객관적 측면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사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그간의 많은 노력들은 이처럼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지표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체성을 지닌 존재이다. 객관적 수준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해서 이것이 곧바로 우리들이 일상속에서 주관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주관적인 행복감이나 자긍심의 고양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삶의 질은 객관성과 주관성이 함께 결합된 총체성의 차원에서만 이해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질, 그 주관적 측면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의 질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요구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객관적인 삶의 수준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삶의 질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오늘날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객관적인 삶의 질 지표들이 가장 낮은 나라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필리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느끼는 행복감은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일본인들보다 높다. 이는 객관적인 삶의 질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까지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연구는 삶의 객관적인 조건들과 그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행복감 간에는 어떠한 일관된 관계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는 결국 삶의 질 문제의 그것이 객관적 차원을 높인다고 해서 반드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상황적 조건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 의식, 혹은 평가와 긴밀한 관련성을 맺으면서 접근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삶의 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삶의 주요 영역들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 복지에 대한 인식, 일상적 생활수준에 대한 인식, 공동체 질서에 대한 평가, 일과 여가에 대한 평가 등 사회 구성원들의 주체적 측면에서의 질적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은 인식은 객관적인 사회 지표들 보다는 이에 대한 공동체 성원 개개인의 평가가 공동체의 안정이나 복지를 판가름하는 궁극적 기준이 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따라서 삶의 질에 대한 연구는 이제 객관적 측면의 지표들과 더불어 문화, 복지, 여성, 가치관, 일상성, 인간개발, 환경, 노동생활의 질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주체적인 인식들과 함께 결합되어야만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삶의 질이 갖는 주관적 측면에 대한 관심은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개인의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개인을 둘러싼 환경적 조건, 사회경제적 지위, 생물학적 속성 그리고 삶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감이나 느낌을 연결시키려는 의미있는 노력들로 평가해 볼만 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방향에서의 연구는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삶의 질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아직도 물량적 지표체계의 상승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이 국민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질까지 닿아있지 않고 있으며, 정책 당국자들의 관심 역시 아직은 총량적 수준에서의 양적인 발전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질이 갖는 주관성의 문제를 염두에 둘 때 결국 삶의 질이란 다양한 측면의 주, 객관적 요인들이 상호작용 함으로써 결정되는 것이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환경적 조건들과 사회경제적 자원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GNP만 올린다고 삶의 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발상사고일 뿐이다. 삶의 질 문제 속에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깊은 자각과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가치관이 결합되어야 하며, 바로 이러한 가치의 전제가 우리의 인식 속에 분명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때 삶의 질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박준식(한림대ㆍ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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