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을 위한 공간

  87년, 풍물패와 연극을 중심으로 작은 모임을 가져왔던 농생물학과 학회는 당시 선배들의 군복무 문제로 그 활동이 잠시 위축되었다가 90년대 들어와서 각 단대에 있는 여러 학회의 부활과 함께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에 ‘생명의 소리’ 라는 과내에서의 작은 모임이 있었습니다. 과특성상의 의미도 있겠지만 여럿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기도 하죠. 그때는 혼란한 시대이니 만큼 학교내에서의 그런 소모임이 잦았었죠.”
  농생물학과 학회(이하 농생물 학회)의 출발점이 된 당시의 상황을 학회장 김새희(농생물ㆍ3)양은 잘 설명해 준다.
  80년대라는 암울한 시대를 거쳐 90년대로 들어오면서 모든 학회가 그랬듯이 농생물학과 학회도 새롭게 시작을 하는데 80년대라는 시대가 가지는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이러한 과제를 안고 93년 5월에 창립식을 갖게된 농생물 학회는 연극부(여누리), 편집부, 풍물패(어우러기)의 세 부서로 구성되어 모두 37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다.
  세 부서중 특히 연극부는 선배들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기도 하는 부서이다. 지난 87년 대동제때는 ‘소설 아리랑’을 각색해 공연을 보여 학우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92년 대동제 때는 김동인의 ‘붉은산’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연극부나 풍물패의 활동이 활성화가 되어 있는 만큼 학회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요소인 토론을 통한 학습은 아직 체계적이지 못하다. “의식있는 학회교사가 필요하죠. 학습에 맥을 잡고 체계를 세워 나가는게 앞으로의 과제이고 또 현재의 필수적인 문제입니다.” 이 점은 학회장 역시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80년대 학번의 선배들도 있지만 생각의 차이가 많이 나다보면 오히려 거리감을 느낄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그냥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박건우(농생물ㆍ1)군은 “선배님들과 대화하고 또 생각을 공감해오면서 학년 초엔 그냥 지나쳤던 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학회생활을 통해 모순적인 현실을 인식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고민해 왔었죠.”라며 선배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말한다.
  ‘누구에게 이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들을 타인들에게도 알리고 싶다’는 학회장 김새희양은 “올해엔 흔들리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자리를 잡아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제 학회사람들은 다가올 겨울방학에 있을 문화답사를 앞두고 지난 여름 7명의 회원만 달랑 참석한 모꼬지때에 풀지 못한 회한을 풀어보려고 열심히 활동중이다.

박두진 기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