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항 풍토 학생회 대중성 부여

  지난 11월 중순부터 일제히 선거에 들어가 한달여간 대학가에 잔잔한 파문을 일게 했던 96년도 총학생회 선거가 27, 28일을 기점으로 대부분 끝나면서 96년도 학생회 운동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소속 각 대학 총학생회는 11월 26일 현재 98개 대학에서 선거가 마무리 되어 당선자가 확정되었다.
  노태우씨의 구속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치뤄진 이번 선거는 95년을 걸어왔던 학생회가 앞으로 벗어야할 껍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장이었다. 높지 않은 투표율, 뚜렷한 쟁점이 보이지 않는 과열경쟁, 선거가 풀어야할 숙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올해 학생회 선거의 특징은 자주적 학생회 계열의 대거 당선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연세대와 부산대, 전남대를 비롯한 79개 대학에서 당선됐으며 전국적으로 당선율 80.16%를 보이며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 원인을 크게 두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5.18, 비자금 문제 등 국민적으로 정치적 관심이 높아지고 학생들의 정치의식이 고조되는 객관적 조건의 작용이다. 학생들은 다른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당면 정치적인 사안의 해결에 앞장선 자주적 학생회에 지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해처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휘말리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로 학생들은 학생회가 학생을 주인으로 세우고 그들의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조직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부산대 당선자측의 “거의 모든 학우들을 만났다. 학우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겸허히 듣기 위해 노력했으며 학우들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 달려갔다”는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선거공약이 실현가능한 공약인지, 후보들이 공약을 실현할 힘을 가지고 있는지가 후보를 판가름할 중요한 잣대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특징으로 민중민주계와 비운동권의 약세를 들 수 있다. 한총련 조직위 조동해 군은 “학우들은 생활상의 불편함만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교육ㆍ정치활동을 비롯해 학생회 운영, 학생회 대중사업등 생활ㆍ학문ㆍ투쟁 전 영역에서 현실성 있고 대안있는 정책과 낡은 틀을 벗으려는 진지한 모색에 호응을 보내는 것이다”고 말한다. 연세대의 한 정책간부는 올해 민중민주계열 총학생회가 등록금 문제나 5.18등의 정치투쟁에 부실했음을 지적한다. 또 10년만에 단일후보를 낸 전남대에서는 지난해처럼 경실련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경실련의 정책이 학우들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15개 대학에서 당선되었던 비운동권 학생회 후보의 경우 현재까지 홍익대와 관동대 등 9개 학교에서 당선되었으며, 학생연대를 비롯해 민중민주계열이라 할 수 있는 학생회 후보는 항공대와 해양대, 한신대 등 9개 대학에서 당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7개 대학을 석권했던 21세기진보학생연합(이하 21세기) 후보는 대구경북지역의 금오공대에서만 명맥을 유지했다.
  세번째로 새로운 시대의 이념이 화두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희망만들기’ ‘가치창조’ ‘사람사랑’ ‘주류질서 전복’ 등의 모토를 내걸고 학우들을 묶어가는 실천적 좌표를  설정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향후 학생회 사업 진행의 실천과정에서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네번째로는 올해 선거에서 예년과 달리 혼탁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기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대나 고대에서 대리투표와 2장이 겹쳐진 투표용지가 나오는가 하면 인제대, 부산외대, 삼척산업대는 폭력사태로 소란이 있었다. 서울산업대 한 후보는 선거출마를 포기했다. 우리학교의 경우, 개표결과 무효표가 득표의 차이보다 커 재검표와 재투표의 과정을 거치려 했으나 이 과정에 양후보진영의 도덕성 시비로 비화되어 선거일정이 미루어졌다. 이러한 시비속에서 선거가 운동권들의 다툼으로 비춰지지 않을 까라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선거일정이 미루어졌다해도 무엇이 진실인가는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 이다. 대학선거판에서 성숙한 선거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학생회에 대한 불신을 우려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학생회 선거에서 모든 후보에게 공통된 공약은 학부제를 비롯한 정부의 대학교육에 관한 비판적 고찰이었으며 이외에도 문화, 여성의 분야와 학생회운영에서도 공통분모가 보였다.
  반면에 관성적인 모습을 보였던 곳은 투표율이 저조한 것을 봤을 때 무조건적으로 ‘학생운동의 존폐위기’라고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밖에 없다. 생활ㆍ학문ㆍ투쟁에서 학우들이 요구하는 부분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선거율이 높을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하튼 한총련은 90년대 들어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3기에 이르렀고 좌충우돌의 모습을 보였다. 내년도에는 그간의 축적된 경험으로 안정적인 질서를 가지고 중장기적 계획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노학연대의 조직적 결합을 가속화하고 개별 학교단위로 진행되었던 학원자주화 운동을 대정부 투쟁으로 승화시키고, 통일운동의 대중화에 노력을 기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우들속에 뿌리내리는 건강한 대안세력’으로 자리잡아 전대협이 가졌던 국민적 지지와 기대를 회복ㆍ발전 시켜가야 할 것이다.

김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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