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천심’ 선택은 하나였다

  지난달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의 오점을 씻어버리기 위한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지난 7월, 5ㆍ18과 관련된 일련의 수사결과 발표와 함께 책임자에 대해서는 ‘성공한 구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해답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해답은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민족의 자존심을 손상시킨…’ 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김대통령의 결단으로 바뀌었다.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이제 뭔가 될 것 같다”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발표 일주일 가량이 지난 지금은 이런 희망마저 깨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그러면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5ㆍ18에 대한 일련의 결정들을 돌아보자.
  올해 4월, 5ㆍ18 수사를 위해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세 전직대통령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면조사만이 실시되어 실질적인 사건 내용은 밝히기 힘들었다. 이 당시 서면조사에 대한 불성실함으로 인해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석달후 7월 6일 검찰의 5ㆍ18을 ‘성공한 구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 그리고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 이란 판결을 내렸다. 이 땅 법에 대한 불신을 씻을 수 없게 하는 결정이기도 했다. 이 시기 이후로 너무나 말도 안되는 결정에 대해 학생 및 국민들은 경악했고 ‘5ㆍ18 진상규명’과 ‘학살자 처벌’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18일 검찰은 5ㆍ18에 대한 모든 수사결과를 발표했고 수사를 종결지었다. 수사내용 역시 수긍할 만큼 명쾌하지는 않았다.
  이와 더불어 김대통령의 그간 반응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역사에 맡기자” 라는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그 후 검찰의 ‘공소권 없음’ 이란 판결후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보자.” 였다. 그리고 얼마전 방향을 급선회하여 ‘5.18 특별법 제정’ 이란 처방을 내렸다.
  이러한 순차적인 결정들에 대한 학생 및 국민들은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학생들의 단일조직인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에서는 공소권 없음이란 결정에 대해 “5ㆍ18특별법이 제정될때까지 투쟁한다.”라는 강경한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9월 29일 1차 총궐기를 가졌다. 1차 총궐기에서는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29, 30일 양일간 동맹 휴업을 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또 11월 3일 학생의 날을 기해 2차 총궐기 대회를 가졌다. 수시로 규탄집회를 열기도 했다. 국민의 여론 역시 이에 못지 않았다. 이는 ’5ㆍ18 특별법 제정과 특별 검사제 도입’을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고 현재는 1백만명이 넘는 국민이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5ㆍ18에 대한 정부측의 태도에 대해 거센 반발을 보인 국민적 여론에 못이겨 김대통령이 ‘5ㆍ18 특별법 제정’을 내렸다고 봐야만 하는가? 그렇다고 만은 보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석은 크게 두가지로 좁혀볼 수 있다. 첫째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국민적 여론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수세에 몰린 김영삼 정권의 난국 타개와 내년 총선을 대비해 정공법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 발표 일주일이 지난 현재에 와서 본다면 두번째의 해석에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5ㆍ18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와 관련자 전원 처벌이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씨등 책임자 몇몇만을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5.18의 실질적인 세력이라 할 수 있는 5ㆍ6공 인사들을 제외시킨다는 방침은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회복하긴 커녕 또 한번 실추시키지 않을까하는 우려마저 든다. 지난 1일 이러한 문제점을 규탄하는 한총련 3차 총궐기대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총학생회장인 김수현(정외ㆍ4)군은 “5ㆍ18 특별법 제정은 김영삼 정권의 항복이자 민중의 승리이다. 하지만 5ㆍ18 투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명심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특별검사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명동성당 앞에서 천막을 치고 140여일째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 있는 한 관계자는 “지금 5ㆍ18 특별법이 제정되어 기쁘오. 하지만 특별법 내용도 미흡하고 특별검사제가 도입될 때까지 농성 풀일은 없지라.”라며 단호한 입장이다.
  5ㆍ18 특별법 제정이란 결과를 이끌어낸 것도 학생과 국민이 성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5ㆍ18 특별법 제정의 의미는 불의에 대해서는 끝까지 응징한다는 사실, 그리고 진실이란 단어를 지켜내기가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갈길은 남아있다. 명확한 5ㆍ18 사건에 대한 해명과 국민이 납득할만한 관련자 처벌, 특별검사제의 도입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민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일제잔재 청산과 친일파 숙청이란 명제 아래 실시된 ‘반미특위’, 또 하나는 민주화의 꽃을 피우기 열망했던 ‘4ㆍ19혁명’. 하지만 이 둘 모두 이승만 정권의 탄압과 박정희 정권의 5ㆍ16 쿠테타로 힘없이 무너졌다. 이제 세번째 잡은 기회가 5ㆍ18관련 문제의 해결이다. 이는 어찌보면 민주화와 민족 정기회복이라는 두 물줄기를 바로 잡아낼 수 있는 기회인지 모른다. 이번에는 김대통령이 천명한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되찾고,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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