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일에 미쳐 사는 사람들

  한독협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95년 10월 18일 출국하여 2개월 반동안 독일에서 단기연수를 마치고 올해 1월 6일 김포공항에 도착함으로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이번에 독일에 갈 때 상해를 경유 중국본토의 북경근방을 지나 구소련 영토를 통과 모스크바의 북부를 거쳐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도착할 때까지 12시간 반이 걸렸다. 1984년 한국 비행기는 중국, 소련을 갈 수 없어 태국,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를 거쳐 프랑크프루트에서 비행기를 바꿔타고 베를린까지 갈때의 거의 하루가 소요되던 때와 비교할 때 단축된 비행시간의 반비례만큼 우리나라의 외교력과 위상이 고양되었음을 느꼈다.
  하루라도 목적지에 일찍 가서 독일인들이 하는 것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그날 19시 20분에 프랑크프루트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아무에게나 닥치는 대로 물어서 지하철을 타고 프랑크프루트의 하우프반호프에 도착하니 목적지인 괴팅겐(Goettingen)행 기차가 바로 있어 무조건 탔다.
  그것이 독일의 고속전철 ICE이며 게다가 내가 앉았던 곳이 특등석이구나 하는 것을 독일에 간지 한달 후에야 비로소 어렴풋이 알았다.
  괴팅겐시는 1978년 3월부터 이곳에 있는 괴테 연구소에서 독일어를 3개월간 배웠으며 이 도시에 있는 실험의학 막스프랑크연구소에서 18개월간 머물렀던 곳이라 이 도시의 지리는 이미 꽤 익숙한 곳이었다. ICE에서 내려 무거운 짐을 끌고 괴팅겐 기차역에 들어서니 18년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미 23시에 가까운때라 기차역 안내원의 주선으로 인근 호텔에서 1박하고 19일 아침에 목적지인 괴팅겐대학내의 무기화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학생 박군의 도움으로 연구소에 도착한 후 과거부터 안면이 있으며 이곳 연구소의 직원인 놀트마이어박사의 안내를 받아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연구소로 가서 초청자인 조지 엠 셀드릭교수에게 도착신고를 하고 책상 하나를 부여받아 업무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 연구실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어 그들과 인사를 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질문하였는데 조지밑에는 얼마전에 교수로 승진한 디트메르 스탈케교수를 포함하여 박사가 3명, EU의 장학금을 받고있는 4명의 외국인 박사과정 후 연구자를 비롯 20명이 있으며 실험기구로는 우리학교에 한 대 밖에 없는 결정구조연구용 X-ray회절기보다 훨씬 나은 회절기가 4대가 있었다. 우리학교에서는 실온에서 실험을 하는데 비하여 이곳에서는 액화질소를 사용하여 -80℃내지는 -120℃에서 결정의 X-ray회절강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새로운 시료를 합성하지는 않고 외부에서 의뢰해오는 시료들의 X선 회절강도를 측정하고 조지교수가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조해석을 하면서 이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조지교수는 프로그램을 개량하는 작업을 수십년동안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이 구조해석을 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나는 구조해석을 할 10가지 시료를 가지고 갔으나 외부에서 구조해석을 의뢰하는 시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나의 시료는 그 줄 사이에 좀처럼 끼어들기 어려웠으나 나는 이곳에 2개월밖에 머물 수 없다는 특수조건이 배려되어 4가지 시료의 X-선 회절 강도를 측정할 수 있었고 이들의 구조를 풀면서 이곳의 모든 결정구조 해석절차가 모두 컴퓨터화 되어 있어서 매우 편리함을 느꼈으며 우리도 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이와같이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조지교수는 오직 결정구조해석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온 정신을 쏟아 항상 어떤일에 심취되어 있어 언제나 생각에 잠겨있는 표정이며 어떤때는 아침인사도 못알아듣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마디로 자신이 하는 일에 미쳐있는 것이다.
  자기 사무실 문에는 ‘나를 방해하지 마시오, 문을 닫아 주시오’란 문구를 붙여놓았다. 그에 의하면 어떤 교수는 식당에서 점심먹는 것도 시간낭비라며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자기 연구실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연구를 하니 이 연구소 소장인 로스키교수의 발표된 논문이 500여편에 이른다는 것에 수긍이 된다.
  독일 시내 길거리를 가보면 머리에 색을 칠하고 이상한 스타일로 머리를 깎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며 배회하는 젊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조지교수와 같이 오직 자기일에만 몰두하는 독일인들이 많기 때문에 독일이 선진국이 되었으며 독일인들이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세계의 모든 결정구조 연구학자중 62%가 조지교수가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결정구조를 해석하고 있다. 조지교수는 명실공히 이분야 세계 일인자인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이 되기 위해서 자기일에 미쳐보기도 하며 노력해야할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한다.

서일환(물리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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