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또 죽었데

  지난 19일 총학생회 해오름식을 마친 학생들은 오후 4시경 사회대 앞 고 오원진 윤재영 추모비앞에 모였다. 추모비앞에 모인 1백여명의 학생들은 국화 한송이를 추모비앞에 놓으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선배들을 되새겼다.
  이곳을 성역으로 만들겠다는 총학생회장의 말은 추모비 주위의 많은 담배꽁초들과 술먹던 자리의 흔적을 메아리 되어 돌아왔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이 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곳이 누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누구를 위해 추모비를 세웠는지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때 여수 수산대학교 학생의 분신소식이 전해졌다. 한사람의 죽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지…
  죽은 이들을 모두 기억하자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이 왜 죽어야 했으며 그들의 죽음을 잊고 사는 우리는 한번쯤 이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와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의 죽음에 “얘, 또 죽었데”라는 말을 아무의미없이 말하는 우리의 무감각함은 또 다른 슬픔이 아닐까 한다.
  30평 남짓하는 추모비 주위의 공간을 지나며 선배들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은 커다란 것들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부터 우리가 서있는 상황의 인식부터의 시작을 바랄 것이다.
  사회대앞 추모비를 보면서 술마실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아니라 우리학교 선배의 생을 한번 되뇌일 수 있는 장소가 언제쯤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추모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저기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라고 옆 친구에게 묻는 학생의 모습보다 ‘저 사람들 추모비에서 오는 사람들인것 같은데’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터 우린 해야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될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는 자체마저 못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추모비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는 것은 우리가 잊고 사는것 자체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이 아닐까….

배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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