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눈물, 삭힐 수 없는 분노

  5.18 특별법이 제정된 뒤 광주의 민심은 어떠할까?.
  16년이 지나간 지금 그대들의 원한은 한풀 꺾이고 사그러 들었을 것인가?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수차례 법정에 서는 동안 광주 시민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올해엔 성대하게 기념식을 치룰 것이라는데 오월 광주는 그 피맺힌 날을 영원히 기억하려 할까? 이러저러한 많은 생각들을 지니고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면서 오월 광주 민심기행은 시작되었다.
  17일 밤 10시 광주 터미널, 전야제를 놓쳐 버렸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한 택시를 잡아 타고 금남로로 향했다. 거리가 조용하고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어 ‘이미 광주의 하루 일상생활은 끝나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택시 운전사 염종만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평소 이렇게 조용한가요?” “왠걸, 오늘은 전야제날인게 그렇제.” ‘전야제여서 도로에 차가 드물다’ 그렇다면 많은 광주 시민이 전야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고 있다는 말인가? 특별법이 제정되고 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세워질 때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던데 그 여파인가 싶어 조심스레 질문하였다.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광주시민들은 무어라 하던가요?” “특검제가 빠진 특별법이 법이여 그게… 광주 시민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있구마이. 전두환, 노태우도 그냥 무야무야 풀려날것 같다니께…” 하시고는 한숨을 쉬었다.
  10시 30분경 나는 도청 앞 금남로에 다달았다. 여기가 바로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건 항쟁을 치룬 곳이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도청 앞에서 모서리를 돌자 전야제 인파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 곳에는 약 3만의 시민, 학생이 하나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이윽고 광주 출정가를 부르면서 시민, 학생들이 일어섰다. 약 12시경 금남로를 가득메우던 인파가 그제서야 조금씩 빠져나갔다. 역시 광주는 아직도 80년 5월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18일, 아침 일찍 망월동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득 태운 25-2 시내버스 안에서 나는 5년째 망월동에서 식수봉사를 하신다는 아주머니 한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80년 5월은 참으로 징했어야. 밤에 무서워서 산속으로 도망을 치다가 나도 죽을뻔 했응께. 탄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어. 공수(계엄군으로 광주에온 공수부대 대원들을 아주머니는 간단히 공수라 불렀다)들이 논밭을 뒤지고 다니며 잡으러 쫓아왔당께. 뻘(빨)갱이들보다 더한 놈들이었어” 아직도 생생해서 가끔 잠을 못이루신다는 그 분은 이내 몸서리를 치셨다. 작년과 다른게 있는지 물어보니 “내가 느끼기엔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야. 다른 사람들은 그걸로 어림없다고 해도 세월은 자꾸 흘러 가잖여. 제발 잊지나 말았으면 하는디.”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자 옆에 앉아 계시던 한 할아버지께서 “공수놈이랑, 그 지휘한 놈들을 모두 쳐 죽여야 하는디.”하고 한 말씀하셨다.
  망월동에 다다르자 허연 백발의 노인분들이 깊은 주름을 지은채 옹기종기 모여 계셨다.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자 이곳저곳에서 오열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들아, 내가 이 엄마가 널 잊지못해, 다시왔어. 너무도 억울해서 흑흑…” 한 아주머니가 차마 말도 하지 못하시면서 눈물을 터뜨린다. 옆에 선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찍어낸다. 10시 추념식이 시작되었다. 광주 지역 정치인들, 광주시장, 유족회장 등이 ‘오월문제 완전해결과 새로운 광주’를 위한 연설을 하고 추모제로 드리지만 참석자들은 오월을 그 날을 잊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모 일간지에서는 헬기까지 동원해서 취재를 한다. 사회자도 특별법 제정 후 첫 기념행사임을 누누히 강조한다. 16주년 추념식은 죽어간 이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산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처럼 여러 미사여구로 이어지지만 유족들의 맺힌 한을 풀기엔 아직 역부족인 듯 하다. 5.18유족회 회원인 박상열씨는 “전두환, 노태우가 재판을 받는다고 해서 서울도 쫓아 올라가 보고, 서명을 받으러 명동성당에서 농성도 해 보았지만 망월동에 올때마다 가슴이 쓰려. 왠지 이들에게 커다란 죄를 짓고 있지나 않나해서.”라며 준비해 온 소주로 목을 축인다. “작년이랑 달라진거. 없어. 전두환, 노태우 저 죽일놈들이 버젓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디 뭐가 달라지겠어. 우리들만의 힘으로, 학생들만으론 안될 것 같어. 4.19때처럼 온 국민이 일어나야 될것인디.” 전국민들이 특별법제정만 알고 있지 풀리지 않는 한을 몰라주고 이제 그만 묻어버리자고 할 적에 제일 망월동에 오고 싶었다면서 박상열씨는 내게도 소주잔을 기운다.
  망월동옆 ‘국민의 소리’라는 백지대자보에는 어린아이의 글씨에서부터 휘갈겨쓴 한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시민의 생각이 적혀 있었다. ‘우리 손으로 꼭 오월 학살자를 전원 처벌하겠다’는 말에서 ‘전두환, 노태우 미워요’라는 말까지.. 아직 광주 망월동은 핏발서린 눈을 감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민심기행을 정리해 보았다.
  망월동을 보고 간다니까 택시비를 깎아 주시며 “광주는 아직도 분노하고 있어라. 하지만 더 이상 아무 기대도 안해. 그놈이 다 그 놈인디 누굴 바라보겠어. 다만 우리가 잊지 않고 이 원한 풀릴 날을 기다릴 것이지. 내년에 다시 와바. 아니 평생을 두고 와바. 우리가 조금이라도 변하는가? 우린 절대로 잊지 않을거구마.” 라던 택시운전자 강모씨의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16년이 지나도, 형식적인 특별법이 제정되도, 전ㆍ노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도 책임자에 대한, 그리고 미국에 대한 완전한 처벌이 없이는 광주를 위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언제쯤에야 분노에 찬 눈물을 거두고 진정한 국가 기념일로 바로서는 광주를 보게 될 것인지.

송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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