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햇살은 핏빛이었다”

  “오빠, 오늘은 그들이 재판받는 날이예요. 엄마와 아빠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달걀을 던지다 경찰서에 들어갔어요. 우리가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계란던지는 것 뿐인 가봐요.”
  컴컴한 무대 뒤로 울려퍼지는 소녀의 독백은 애절하기만 하다.
  극단 토박이가 열연한 이번 연극은 왜곡과 부당함에 대항하여 5.18당시의 상황을 사실대로 묘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하여 특히 연극 중간중간 사용된 슬라이드는 그 날의 참혹함을 그대로 담아 내고 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우선, 장터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광주의 진실을 알려내는 것, 그리고 그 시대의 대학생 이정연군이 자아를 깨고 애국을 위해 투신하는 과정을 보임으로써 시대의 지식인 상을 표출하는 것이다.
  작품의 주무대 배경은 평범한 시장터. 인정과 희화, 넉살이 녹아 있는 장터 사람들의 목소리는 5.18의 진실을 전달해 내는 데 손색이 없다.
  처음에는 “아 이럴 땐, 뜨뜻한 방구석에 콕 처박혀 있는 기 최고지라” 라며 언청을 드높이던 나주댁도 최씨가 격양된 어조로 전하는 “아, 공수놈들이 할머니 머리통을 박살냈지 뭐라. 길바닥이 온통 피바단 지라.” 라는 등의 말을 듣고 경악하기 시작한다.
  무대는 바뀌어  갈수록 진지해져 가고 급기야는 피켓 문안을 작성하는데 서로 고민하는 모습으로까지 전환한다.
  해학속에 스며있는 그들의 고민은 진지하다. ‘전두환을 물리치자.’ “아니지라, 그건 너무 약하지라. ‘전두환 꼬실리자’가 어떻소?” “아 좋소 좋소” 그들이 고하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관객들의 표정에도 고통스러움이 베어 있다.
  장터인의 눈빛과 몸짓은 “국민을 지켜야하는 군인이 어떻게 국민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느냐.” 라는 흥분과 울분이 표출되어 있는 한편으로는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이 표출되어 있다.
  전남대학교 학생 이정연은 장터에서 유가 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다. 무대에 처음 나온 그는 데모를 하다, 친구가 개머리판에 맞고 대검에 찔리는 것을 보고 두려움과 울분에 싸여 집에 쳐박혀 있다가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양심과 저항 사이에 내면에서 갈등을 느끼던 그를 향해 아버지와 시장 어른들은 “아부지 생각해서 데모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마래이”라는 말까지 남긴다.
  구석으로 내몰리기만 하다 그가 일어서는 모습은 시대를 짊어진 젊은이에게 걸머쥐어진 의무였다. 그렇도록 내면의 갈등을 겪던 그가 어느새 “두려운 것은 역사의 심판이오” 라며 선봉에서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모습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 연극이 구체적으로 시선을 돌린 곳은 아들이 고민을 딛고 투사로 바뀌어 가는 과정 뿐 아니라 아프고 절망스러운 시대의 산물로 표출되는 5월의 어머니의 형상이다.
  5월의 어머니. 갑자기 억울하게 잃은 자식이 너무나 한스러우신 어머니. 이정연의 어머니도 응당 그러했다. 어지러운 시국에 없어졌다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안방에서 웃음과 함께 “정연이가 돌아왔지라, 우리 정연이가.” 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란도란 하는 얘기는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얘기를 우연히 들은 나아들은 마지막 양심을 완성하기 위해 그날 밤에 떠난다. 5월의 어머니의 한은 이때부터 더더욱 고조된다. 급기야 사망자 중에 아들을 발견하고 오열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5월의 어머니는 소설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며 우리가 다 함께 거머지고 가야할 시대의 아픔이다.
  금희의 말대로 그 날은 핏빛이었다. 그러나 법정에 서서도 죄인을 이토록 당당하게 만드는 지금 세상의 빛깔은 수많은 5월의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여전히 핏빛이리라.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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