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향한 통큰 단결, 힘찬 질주

  대학시절, 누구의 가슴에나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다.
  올해는 한총련과 그의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창설된지 꼭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전대협과 한총련은 어떤 일을 해왔으며 어떤 과제를 남겨 놓았을까? 학생운동의 발전은 전대협보다 훨씬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4ㆍ19때 정점을 이뤘던 학생운동은 5ㆍ16군사쿠데타로 인해 암흑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부패한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희생됐던 80년 광주는 미국개입을 통해 우리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그대로 보여줌으로 학생운동에 자주ㆍ민주ㆍ통일이라는 3가지 목표를 안겨준다.
  이렇게 내용적 발전을 거듭하던 학생운동은 86년의 건대항쟁을 통해 학생들에 투쟁의 무모함과 단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 교훈이 87년 전대협을 건설시키는 토대가 된다.
  제 2기와 3기, 88-89년은 통일의 열기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시기였다. 임수경양의 평양축전 참가는 ‘우리는 한민족’ 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감동을 전국민에게 가져다 주었고 동시에 전대협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91-92년은 전체 민족민주운동의 강화를 위해 한총련 조직의 강화를 꾀하는 시기였다. 이때 여러계층의 민중운동과 연대사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전대협을 거치면서 학생운동은 좀 더 폭넓은 대중성의 확보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이러한 고민을 통해 한총련이 93년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한총련의 출발은 시작부터 순탄하지는 못했다. 92년 대선패배와 소위 문민정부에 대한 혼란과 갈등이 학생들의 내부에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94년에는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문민독재정부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 ‘미국반대, 김영삼 타도’라는 구호를 내논다. 또한 쌀수입반대투쟁 과정에서 ‘백만학도 총투표’등의 성과를 얻기도 한다.
  제3기 한총련은 민족사적 대전환기라는 시기규정을 통해 다시한번 통일로 도약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정민주ㆍ이혜정 대표 방북’등 활발한 통일투쟁속에서 자주와 민주를 함께 풀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게 된다.
  이같은 10년의 역사에서 학생운동은 ‘한다면 한다’, ‘통큰 단결’등의 조직적 기풍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좌ㆍ우 편향을 겪으면서 많은 오류를 남기기도 한다. 여러 가지 비판이 분분하지만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보기로 한다.
  첫째, 대중성의 확보이다.
  90년대 들어, 가장 큰 특징은 학생들의 요구가 세분화ㆍ다양화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학생운동은 이런 다양한 요구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이에 대해 한총련은 ‘부문계열의 강화’를 들고 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과 과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협의체들이 생겨나고, 이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요구에 맞는 투쟁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둘째는 중앙의 지도력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간 학생운동의 지도부에서는 무수한 비판과 이견차가 오고갔고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에게는 통일되지 못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쌓여간 것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견은 10여년의 역사속에서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전대협ㆍ한총련은 일단 서로 합의한 것은 실천을 통해 검증하는 기풍을 지니게 됐다.
  현 시기의 여러 논쟁과 이견 역시 일단은 통크게 단결하고 이후 실천에서 오는 오류와 한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판하고 반성하자는 것이 지금의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의견이다.
  셋째는 현실적인 대안의 부재이다. 한총련이 외치는 구호와 과제들이 모두 맞다고 해도 대중들의 가슴에 와닿을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총련은 “대안은 학생 대중들이 과정속에서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과학생회 체계의 강화를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의 의견이 수렴된다면 좀더 나은 대안들이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결국 현시기 정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 그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를 내용으로 투쟁하는 것만이 바로 대안을 내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작년, 전국적 호응을 얻었던 5ㆍ18 특별법 제정투쟁 등을 들 수 있다.
  아직 한총련은 10년 나기이다. 앞으로 또 10년, 혹은 그 10배 이상을 살아나가야 할 어린아이이다.
  그리고 이 어린이를 장성한 어른으로 키워내는 것은 꾸준히 한총련을 사랑하고 비판하며 지적하는 백만학도의 몫일 것이다.

송기선 기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