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참여 미흡, 공직자들은 주인 자세

  몇 년전에는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않아서 민주화나 지역발전이 되지 않는다고 야단이었고 1년전까지만 해도 단체장을 임명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지방자치의 위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작년 6.27선거후 제2대 지방의회와 1대 단체장이 주민직선에 의하여 구성된 이후 이전과 같은 비판은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뽑은 지방공직자들을 평가해야 한다고 하는 소리도 들린다. 지방자치가 실시되어도 그리 획기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에 느끼는 불만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지방자치 실시 1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에 대한 정확한 성적표를 매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1년이란 기간이 실시한 정책들이 충분한 효과를 산출하기에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비록 1995년 6월 27일에 선거가 치뤄지기는 했지만 예산은 연초에 확정이 되는 것이므로, 새로 선출된 지방 일꾼들이 실질적인 정책을 추진한 것은 채 반년도 못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일꾼들의 1년 성적을 매기는 것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 지방자치 현실에 대하여 전적으로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일뿐 매우 복잡한 요인들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인식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방자치를 평가하기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을 두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첫째, 지방선거실시가 곧 지방자치실시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앙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던 지방이 이제 독자적인 의사결정기구와 집행기구를 가졌으니 지방자치가 실시된 것이 아니냐는 논리이다.
  이는 일면 타당한 것 같으나 지방자치의 관건은 지방의회와 집행부에만 달려 있고 우리(주민)은 수혜자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발전되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 된다. 주민들은 가만히 변화하지 않고 있으면서 ‘지방자치 실시해 보니 별 것 아니다’라는 평가를 하면 그릇된 사고라는 것이다. 지방자치란 공동체의 일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처리하는 것이 기본이고 편의상 그들의 대표를 뽑은 것 뿐이다.
  주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참여하고 희생하지 않고 그들의 대표들이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지방자치의 본질은 퇴색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방자치를 방관자적 간접민주주의를 실시할 수는 없으며 어느 정도 직접민주주의 정신이 발휘되어야 한다.
  즉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주민들의 공동체의식 함양과 참여는 충분조건이다.
  둘째, 지방자치는 곧 지방정책에 있어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방의 세세한 실정을 모르는 중앙이 의사결정을 하고 국가공무원이 권위주의적 관료행태를 가지고 집행을 하던 것을 각 지역별로 정책결정과 집행을 하니까 비능률적인 요소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리이다.’ 이때 효율성을 목표를 달성하는데 드는 시간과 재원 등 각종 비용의 절약이라고 정의한다면 지방자치는 오히려 효율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지방의 다양한 이익이 표출되기 때문에 이를 조화시켜 합의를 이끌어 내야하기 때문에 목표의 설정과정과 정책의 집행과정에서 불협화음, 갈등, 시간소요등은 자연히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지방자치를 실시하니 낭비적 요소가 많아졌다는 비판은 지방자치의 속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중앙집권시대에 비하면 시간과 재원 그리고 노력을 더 투입하여 좀 더 지역공동체에 적합한 목표를 설정하고 집행함으로써 주민들의 편의와 행복을 더욱 증진시키자는 것이 지방자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한계점을 인정하고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지방자치를 평가해 보기로 한다.
  이는 대전ㆍ충남지역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조사를 통한 것도 아님을 참고로 밝혀 둔다. 평가의 대상은 선출직 지방공직자, 지방공무원, 중앙, 주민들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먼저, 지방에서의 정치적 민주화라는 측면을 고려해 보기로 한다. 지방의원과 단체장들은 선거시에 표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기 때문에 주민의 표의 위력을 안다는 점에서 민주화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직을 마치 특권인양 행세하려는 이들의 태도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방의원은 마치 작은 국회의원인 것처럼 행동하고 단체장은 마치 지방 대통령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보인다.
  그렇게 언론의 비판을 받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금으로 연수를 빙자한 외국여행을 한다든지, 이권에 개입한다든지, 수당을 올린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자기를 희생하여 주민과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생각이 결핍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에는 지방공직자들의 자질뿐만 아니고 중앙정치의 파벌화로 의한 파급효과나 주민들의 압력행사가 부족하는 환경적 요인도 작용한다.
  다음으로, 자치행정의 민주화와 능률화라는 측면을 평가하기로 한다. 주민들의 민원을 신속히 처리한다거나 격주근무제로 인한 토요일 오후 근무, 사무실 시설 배치변경 등 가시적인 효과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각 자치단체에서는 소위 조직개편이라는 것을 앞다투어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노력들은 형식적인 면에 국한되고 내용면에서 큰 변화는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조직개편도 국, 과, 계 등 명칭만 바뀌었을 뿐 주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위주로 바뀌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현행 법률이 지방자치단체에게 완전한 자주 조직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공무원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적 관료주의가 그대로 상존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대부분의 공무원이 이미 중앙집권시대를 경험하고 그에 맞는 사회화를 겪은 사람들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에도 이들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다.
  단체장들도 공무원들에게 적절히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있고, 업무의 내용도 봉사와 지원보다는 규제와 통제가 주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민참여의 문제를 보기로 한다. 앞서 밝힌대로 주민참여는 지방자치를 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인 동시에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꽃피울 수 있는 열쇠이다. 지금까지 각종 의회의 모임에 그나마 몇자리 안되는 방청석이 텅텅 빈다든지, 주민들이 지방자치의 업무를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은 매우 결핍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인 이익이 침해되었을 경우 등장하는 집단민원이나 경실련 등 시민운동단체가 있기는 하나 지방자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데는 미흡한 설정이다. 주민참여가 활성화 되지 못하는 데에는 현대사회의 특성이 중요한 원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원자화되고 개인주의화되고, 도시화로 인한 인구이동도 크고, 교통통신의 발달로 지역에 제한받는 정도가 약화된다.
  따라서 주민들은 자기가 속한 지역공동체에 정체감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발전은 요원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이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여야 한다. 홍보를 자신들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정치적 선전으로 활용한다든지 공청회를 이미 윤곽이 잡힌 결론을 얻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한다든지 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방자치단체의 공직자들이 주인자세를 버리고 스스로 주민들에게 다가가서 문제를 솔직히 고백하고 협조를 구하는 조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단순히 이용만 당하는 관주도형 주민참여는 주민들도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성패의 기로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미가 급한 우리 민족은 조만간 만족할만한 결과가 안나오면 지방자치를 왜 하느냐는 재중앙집권론에 동조할 가능성도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1년이 되어 가는 지방자치는 잘한 것 보다는 개선해야 할 점을 더 노정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평가를 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겨우 낙제점을 면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 성적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적이기도 하다.

임도빈(자행ㆍ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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