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문화공간이 숨쉬는 도시

  과천은 작은 위성도시지만 계획적으로 발달했고 문화시설도 풍부한 도시라고 익히 들었다. 이 도시가 나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 일으켜 줄지 사뭇 조바심을 내며 과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과천으로 향하기 위해 지하철을 2번 갈아타니 과천경마장 앞에 당도했다.
  지상으로 나가기전 지하벽은 기수들의 역동적 모습을 그린 벽화로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제2회 경마 문화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줄지어 깔끔하게 붙어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에는 그들이 마련한 경마문화제의 다채로운 행사 중 일부가 행해지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인공폭포를 뒤로하고 조그만 간이무대 위에서는 ‘청각장애인 돕기 라이브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기타를 치며 장애인들을 위해 수화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았다. 그들의 무대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하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한 곳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기에 발길을 옮겨 이곳저곳 경마장 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이것저것의 놀이시설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군데군데 많이 띄었다. 그외에도 애마사진 전시회, 기수복 디자인 전시회, 가족끼리 만든 말상등의 전시회등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행사는 아니었지만 문화제 기간 동안 전통 마상 무예시연, 불우노인 경로잔치를 위한 국악한마당 등이 이미 열렸거나 예정중에 있었다.
  ‘마사 박물관’, 호기심이 발동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록 관람하는 이가 나 혼자였을지라도 나는 흐뭇했다. 에어콘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오싹하게 느껴지는 그곳에는 마문화 관련 유물들과 경마사의 과거와 현재가 살아 숨쉬고 있는 듯했다. 여러 고대의 안장들과 말의학서, 마상배라는 그릇 등을 보며 도대체 무슨 박물관일까 하는 나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해결할 수 있었다.
  경마장에서 나와 다른 문화시설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꽤나 큰 축에 속하는 현대미술관, 경마장에서 나와 거기까지 가는 버스는 없는 듯 했고, 멀리 형체가 어렴풋이 보이는 그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피곤해서 땅에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은 다리를 위로하면서….
  그림 안내도에 표시된 미술관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더 걸어올라간다는 것은 무리였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다 중간 도착점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었다.
  아침에 쾌청했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부터 찌뿌려지고 있는 가운데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내릴 것처럼 우중충한 기운이다. 그속에서 여러가지 미술품들을 감상한다는 것은 꽤나 분위기 있는 일이었다. 확산공간이라는 제목의 조각품은 마치 뒤틀려있는 창자를 연상케 하고, 10개의 계량기를 쌓아올린 작품은 바늘의 눈금이 가리키는 것이 저마다 다르고 크기도 육중하며 실감을 더하고 있었다.
  미술관 건물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공간에 제멋대로 배치된 작품들로 정신마저 어지러웠다. 갑자기 뭔가를 생각하도록 그러면서 뭘 느끼냐는 듯 나에게 질책되듯 들어오는 듯한 질문들로 그러했다.
  모두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미술관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작품이 어려워서인지 한 작품앞에서마다 오래 머무는 모습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바를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들이 진지해 보였다.
  다시 푸른 강위를 지나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서 과천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쭉쭉 뻗은 과천시내 도로를 내달리는 버스안에서 차창밖에 비치는 과천 시가지의 모습은 깨끗하고 단아해 보였다. 정류장 지붕의 모습마저도 유치원 선생님이 고안했을 법하게 귀엽고, 조금 더 내달리다 사거리에 들어서니 종합청사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달리니 교외 농촌의 풍경이 펼쳐졌다.
  다시 전철역으로 가서 왔었던 행로를 되밟아 대전으로 돌아오며 하루동안 벅찼던 여정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서울의 위성도시인 과천. 편리한 교통과 깔끔한 시가지, 풍부한 문화공간이 있는 도시로 뇌리에 박혀져 아직도 떠나질 않는다.
  문화의 불모지로 일컬어지는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은 과연 얼마나 많은 문화시설이 향유되어지는 곳일까? 크기는 우리나라에서 특별시 다음으로 큰 광역시이면서 행정구역이 크다면 그만큼 그에 따른 여러가지 제반 문화시설도 갖춰져야 한다는 반항심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육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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