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우리학교 A양. 대학 2학년이 되어 학과공부를 하려하지만 원하던 과가 아니어서 흥미가 생기질 않는다. 전공을 선택하려던 시기에 상담할 선배나 교수가 필요했으나 주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소신껏 희망했던 학과에 지원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아 원치 않던 학과에 배정되었다. 전과를 신청할까 생각도 해 보았으나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새 학기가 되면서 신입생이 들어왔지만 아직 신입생과 말 한마디 나누어 보지 못했다. 신입생들을 보고 있으면 예전 그녀의 모습 같아 안쓰럽다. 

  위의 상황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학부제가 실시되자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이번 학기 우리학교 경상대와 자연대는 학제를 개편하여 모집단위를 변경하였다. 경상대는 기존의 경상계열에서 경영학부, 무역·경제학부로 나누었다. 또 자연대는 기초과학부를 5개의 학부로 나누어 신입생을 모집했다. 이처럼 학제를 개편하게 된 데에는 학부제 시행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자연대 부학장 부덕훈(수학·교수)교수는 “학문의 특성상 어울리지 않는 학과들끼리 한가지 학부로 묶여 있어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번의 학제개편은 그 문제를 고쳐나가려는 개선 조치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존의 학제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무엇일까.

  먼저 전에 비해 학생들의 학습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김병욱(국문·교수)교수는 “학생들이 전공 수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공을 배정 받고 수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해력이 떨어지며, 강의의 수준도 낮아졌다”라고 얘기한다.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전공 기초 과목 수강을 기피하는 학생들에게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은 원하는 학과를 배정 받기 위해 보다 좋은 학점을 받으려 한다. 이 점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문제는 학생들이 보다 수월하게 학점을 받기 위해 전공 기초과목 보다는 교양 과목 수강에 치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원하는 과로 가려는 소모적인 경쟁은 전공 탐색의 기회 부족을 불러오게 되며, 전공선택에 있어서도 학생들로 하여금 자율성을 잃게 한다.

  한편, 학생들이 학과에서 정체성을 잃고 소속감을 잃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황인덕(국문·교수)교수는 “1학년 때의 소속감은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은 해당 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열성적이어야 하고, 교수나 선배들도 관심과 애착을 갖고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교육적 측면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라고 말한다. 1학년생의 소속감은 단순한 친밀감에 그치지 않고 자신감 형성과 인간성을 기르는데도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학부생들의 소속감 결여는 학생 자치권의 약화를 불러왔다. 문과대 학생회장 신선미(독문·4)양은 “학부제를 시행하게 되면서 학생회의 사업을 꾸려가기가 힘들어 졌다. 또한 선·후배간의 관계도 친밀감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학부제 시행과정에서는 학문의 특성이 전혀 다른 학과끼리 묶이는 모순적인 구조가 나타났다. 이는 학부제 도입 전에 학제개편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부족한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과 학생들의 인기 학과 집중현상은 기초학문이 붕괴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적절히 조절하는 교과과정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은 이 같은 기초학문 추락에 한 몫 했다.

  부덕훈교수는 “이번에 기초과학부를 특성에 맞추어 나눈 것이 학부제의 틀 안에서는 이상적인 방향이다. 기타 다른 단과대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부제가 시행된 수년 동안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고,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여전히 문제들은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 학부제를 이대로 끌고 가느냐? 전면 재검토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김병욱 교수는 “지금이라도 특단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교육의 질을 포기하는 형식인 학부제를 더는 끌고 가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무연구처장 장동일(농기계·교수)교수는 “학부제 시행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은 일종의 부작용이며 해결 과제 일뿐 이 것을 문제삼아 정책의 재검토를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학부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시행과정에서 생긴 노하우를 활용하면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여야 한다.

  정부와 학교에서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로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부와 학교당국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내지 못하는 이상 또 다시 학생들은 정책의 실험대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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