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식향상ㆍ위상정립시급

  국민소득 1만불시대가 도래된다. 우리의 의식구조가 과연 1만불에 걸맞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개 소득수준이 1만불이면 문화면에서 의식구조가 바뀐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문화는 ‘존재’에서 ‘소유’로, ‘피상적 즐김’에서 ‘피부적 즐김’으로 패턴이 바뀐다. 더구나 세상은 사상이데올로기에서 문화이데올로기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민족, 지역, 전통, 문화라는 말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문화를 유형으로 분류하면 무형인것과 유형인것, 가치로 보면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가 있다. 물론 문화를 경제적인 수치로 따질 수는 없다.
  무형적인 것은 종교, 사상, 음악, 무용과 같이 정신적인 것이고, 유형적인 것은 건축, 공예, 미술, 조각등과 같이 조형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문화의 절대적 가치는 정신적 활동과 물리적 표상을 배경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야 한다. 상대적 가치는 그것의 절대적 가치와 더불어 지역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보편성보다는 특수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종묘가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선포된 것도 한국 민족문화의 독특한 정체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가 다른 민족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체성 때문이다. 한나라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가장 중요한 문화정책은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문화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행위나 중앙문화를 모방하는 문화정책은 결국 ‘종속문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대전이 ‘문화속방’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전은 결코 일제때 만들어진 신흥도시가 아니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그 흔적이 둔산의 청동기시대 집자리를 비롯하여 곳곳에 남아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영남과 기호로 나누어지는 양대 문화권 중 ‘기호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문화의 중심지는 곧 정보의 중심지다. 조선조때 이미 한문화권의 정보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이렇듯 중요한 역사문화 환경이 대전시의 송촌지구 택지 개발사업에 따라 사라져 버렸다. 역사적 문화환경은 그 장소성과 정체성으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조각이나 공예품은 장소가 달라져도 가치가 살아있지만 건축문화재는 장소성에 따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해 대전시장에 출마했던 후보는 “향토문화가 살아 숨쉬는 성숙한 문화도시로 발전시키며, 송촌동 택지개발을 재고하며, 문화유적의 훼손방지와 조화로운 개발을 위해 철저한 보존대책을 수립하겠다”고 공약하였다.(중도포커스 95년 6월호)
  시장에 당선된 후 ‘택지개발을 재고’ 하겠다던 공약은 접어버리고 ‘향토문화’가 숨쉴 수 없도록 택지개발을 강행하고 말았다. ‘철저한 보존대책 강구’는 어떻게 되었는지 언급조차도 없다. 대전문화가 말살 당하고 있는 생생한 현장이다. 지킬 수 없는 공약이라면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한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되어버렸다.
  약속과 달리 이러한 문화말살 행정이 거리낌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역사문화 의식이 시장에게는 없었던 것이고 두번째는 문화를 향유할 줄도 모르고 귀중한 역사 문화환경이 파괴되어도 관심이 없는 대전시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현명한 시민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 둘 것이다.
  최근 대전시에서 중앙정부에 2000년 ASEM(아시아 유럽정상회의) 유치신청을 했다. 이 회의 참석 귀빈들이 ‘대전’을 보여달라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엑스포? 고층빌딩? 획일화된 고층아파트? 그 어느것도 대전의 정체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것이 대전문화라면 어느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공주ㆍ부여, 아니면 경주로 갈 수 밖에 없다. 대전의 문화는 이미 말살되고 없다.
  이제 시대는 ‘문화’가 무기인 문화전쟁시대이다. 문화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문화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시 당국에 몇가지 방안을 제안해 보자.
  첫째, 지금과 같이 문화ㆍ체육부가 통합된 것은 ‘문화전쟁시대’의 전력약화를 초래하는 일이다. 이질적인 부처의 결합은 문화행정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따라서 문화전쟁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문화부가 독립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행정개편이 어려우면 지방정부에서라도 독립된 문화국을 설치 운영 하여야 한다.
  둘째, 정부내 문화부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 문화부처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긍심이 없다. 한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화부 직책을 소홀히 하면 그 폐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방정부내 문화국이 만들어지고 위상도 다른곳보다 높아져야 한다.
  셋째, 문화에 대한 의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의식변화는 정책담당자, 행정가, 시민 모두가 그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문화행정 담당자의 전문성이 향상되어야 한다. 지방 공무원 교육 프로그램에 전문성을 고취할 수 있는 과정을 포함시키고 일반 행정직도 이 교육과정에 부분적으로 참여토록 하여 전반적인 문화의식을 향상시킨다. 모든 행정가들이 문화를 이해할때 문화정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시민의 문화의식 향상도 이들이 선도하게 될 것이다.
  미래사회는 문화상품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제는 선심성 문화예산에서 우선적 문화예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문화속방’을 벗어나는 대전의 미래는 문화정책에 달려있다.

이왕기<목원대 건축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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