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운동하는 신부 유낙준 선배의 삶

 “안정적인 고용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시급합니다. 가난한 이동네 사람들의 경우 남자는 거의 막노동을 뛰고 여자는 식당일을 하는데 남자의 경우 1년에 일하는 날이 1백 90여일 정도 밖에 안되죠. 실상 그럼으로써 기본적인 자녀교육부터 시작하여 파생되는 문제점들도 큰 거구요. 하루 종일 마늘을 손이 부르트도록 까고 난 대가로 겨우 2천원을 받고 그걸로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하는 집도 많습니다.”
 성남동 기차소리가 요란한 기찻길 옆을 지나다보면 ‘나눔의 집’이란 글씨가 눈에 뛴다.
 이 곳에서 몹시 분주하게 뛰고 있는 유낙준씨는 우리학교 농화학과 80학번 선배이자 대한 성공회 소속 신부로 활동하고 있다.
 쉽게 말해 나눔의 집은 안정된 고용과 주거를 비롯한 아이들 공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를 함께 일구어감으로서 빈곤의 문제도 해결하고 문화적인 것도 함께 확보해 나가고자 만들게된 실험공간이다.
 “그냥 직장에 취직해서 돈받고 산다는 건 너무나 공허한 삶인것 같았습니다. 공허하지 않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그런 방향을 찾아나서려고 노력했죠. 대학교 다닐 때 외쳤던 ‘농민 속으로 노동자 속으로’라는 구호처럼 같이 더불어 살기를 원했던 거죠.”
 86년도 당시 우리학교 총학생회에서 총무부장으로 일하던 그는 곧 노동운동계로 투신하여 봉제공장과 유리공장을 다녔다고 한다. 그에 더하여 92년부터 중천동 사회복지관에서 일한 경험으로 인해 대한 성공회에서도 그를 이번 일에 추천한 것 같다고 한다.
 “진리를 위해 내 몸이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함께 도구로 쓰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유신부의 인생은 도구로 살려고 자꾸만 자꾸만 다가서려는 삶인 듯하다.
 “예전에 강제징집 1호로 처음 유성 어느 호텔에 잡혀 있던 도중 바라본 학교의 정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를 낳아주고 청년을 아름답게 하는 이 학교를 못 잊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에 이어 인간존중에 관한 얘기를 담는 그의 표정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사람의 삶 자체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다가서려고 애쓰는 이 사람의 가슴이 그보다 가슴이 작은 다른사람의 마음의 지평을 조금씩 더 넓히기를 기도한다.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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