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근성으로 국경과 한계를 뛰어넘다

 

 지난 7월 중순 충남대 신문방송사 취재팀은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해외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동문들을 취재하기 위해 11박 12일 일정으로 미국 서부지역을 다녀왔다.  총 8회에 걸쳐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다. 여섯번째 만남,

 1992년 LA의 한인 타운, 인종차별에 격분한 흑인들의 소요로 수많은 한인들의 상가가 붕괴되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대규모 참사가 일어났다. ‘LA폭동’이라 불리는 그 현장에서 살인사건을 취재하던 2명의 한국인 기자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흑인들의 뒤를 밟는다. 범인의 사진을 열심히 찍는 순간, 눈치를 챈 흑인 3명이 기자들을 무섭게 쫓아오기 시작하는데.

 뛰어난 영어실력보다 중요한건 근성이더라
 “목숨을 걸고 따돌렸습니다. 다른 기자들로부터 ‘무슨 생각으로 그곳에 들어갔냐’는 질책을 받고 나서야 제가 취재한 곳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Damn’이라 불릴 정도로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때가 사회부 기자로 생활한지 2년째 되는 해였을 겁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실감나는 취재 후일담을 풀어놓는 김정섭 동문. 생물학과 졸업과 기자라는 직업의 엉뚱한 매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미주 한국일보의 18년차 베테랑 기자다. 지금은 사회부 담당 부국장으로 쉬엄쉬엄 임할 법도 한데, 후배 기자들보다 다섯 배는 더 뛰며 취재원들에게 귀동냥을 하느라 여전히 바쁘다.
 “취재 할 땐 아무래도 언어가 문제죠. 답변에 성의는 없고, 말은 얼마나 빠른지. 때문에 우리에게 전화취재란 없습니다. 모든 현장을 직접 보고 그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하나 물어보며 취재 합니다.” 이렇게 꼼꼼하게 밀착취재를 하다 보니 폴리스 라인 밖에서 함께 취재하던 미국 기자들보다 더 상세한 정보를 캐내곤 한다고. 이렇게 미국에서 한국인 기자로 생활하면서 김 동문이 몸소 익힌 것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자근성이다. 거칠다는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도 엄한 경찰수사 현장 속에서도 “1:1로 대면했을 때 한 번도 져본 일이 없다”고 말하는 김 동문은 스스로를 ‘근성 있는 사람’이라 인정한다.

 미국에서 한글로 신문을 낸다는 것
 미국에서는 ‘마이너 랭귀지 페이퍼’로 통하는 미주 한국일보 편집국의 마감풍경은 색다르다. 영어로 취재를 한 뒤 한국어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 하루 1면을 1명의 기자가 도맡을 정도로 인력난에 시달리지만 그들에게는 남다른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다. 로스앤젤레스 외에도 뉴욕, 워싱턴, 휴스턴, 시카고 등 미국 곳곳에 이민을 온 한국인들의 커뮤니티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커뮤니티 안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이민자들이 이곳에 잘 정착하도록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우리들의 목표죠. 그래서 한국적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기자로 많이 채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김 동문은 신문에서 쓰는 언어가 발전하지 않고 쌓인다는 점에서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한다. 기자가 입사하던 당시의 한국 문화 상태에 멈춰있기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나 만연체 등이 그대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충남대 후배들에게 “이곳에서 기자로 활동할 생각이 있다면 도전해 보라”고 권한다.

 대학교 다닐 때 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 …
 김 동문은 “노는데 이과대학보다 더 좋은 곳이 없죠.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참 많았는데” 라며 그리운 대학시절의 이야기를 웃음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실체는 예사롭지 않다. 김 동문이 3학년일 당시 수업시간, 우리학교 학생들을 비하하는 모 교수의 발언에 생물학과 학생대표로서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따끔한 직언을 고해 화제가 됐던 것. 이런 김 동문의 기질은 한국일보 입사 후에도 숨길 수 없었다. 입사면접 시 노조를 결성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지만, 임금을 올리기 위한 기자들의 노조 맨 앞엔 어김없이 그가 서 있었다.
 한편 지금에 와서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대학에 다닐 때 하지 않은 공부란다. “아, 대학시절의 지식이 지금도 반영되어야 하는 건데…. 대학 다닐 때 놀면 실무에 가서 고달픔을 느끼게 되는 건 불문율입니다.” 기자 생활 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의 모든 원인이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김 동문. 끝내 ‘열심히 공부하라’는 결론을 내린다.

 * 한 줄 인생평 : 자신의 한계를 봤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솔직히 기자들의 세계는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그 사이에서 지방 국립대인 충남대 출신이라는 것은 저에게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없는 게 있죠. 그건 바로 실패의 경험인데, 이것은 자신의 한계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한계를 알고 극복하는 사람이 진짜 큰 사람이죠. 도전의식은 정말 중요한 옵션입니다. 두드림의 결과는 열리거나 깨지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스스로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아까운 인재를 버리는 일이 없길 소망합니다.

이정아기자 ayersrock@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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