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동안 우리학교에서 버스운전기사, 16년동안 식당아주머니로 일해온 신태호 아저씨와 유춘자 아주머니.
  ‘교수님 한테나 인사잘해’, ‘맛있게 먹어주면 그만이지’라 말하시고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 겸손한 모습을 보이시는 분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정말 중요하고 당연한 것들을 잊고 살아았던 것 같다.

제작  충대신문 사진부 

   “고충이 많으시죠”
  “제발 버스안에 쓰레기 좀 놓고 내리지 말어, 이거 치우려면 여간 힘든게 아니야” 우리학교에서만 26년간, 자유당 시절때부터 40년동안 버스 운전만을 해온 우리학교 최고령 버스 운전기사 신태호(63세)아저씨의 첫 답변이다.
  신 아저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 그 후 군대에 있는 차량 정비반에 배치되어 그 곳에서 차량기술 면허를 취득 40여년간 차와 함께 인생을 보내왔다.
  “내년 12월이 정년이야, 재수는 절대 안된다는 신념으로 다섯명의 자녀중 네명을 대학졸업까지 시켰지,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운전대는 못잡을 거야” 마치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듯 얼굴에 쓴 웃음을 지으며 우리학교 차고에서 보운 캠퍼스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시는 신태호 아저씨.
  아저씨는 박정희 대통령때에 착한 학생 많고 공부잘하는 학교라고 대통령이 하사한 버스 2대 부터 시작해 7,8년 전에는 11대까지 있었으나 차량 운용비 문제와 이용자가 줄어들어 지금은 6대 밖에 없다고 우스개 소리로 말한다.
  차안에 읽다 놓고간 신문, 커피잔, 음료수 캔, 과자 봉지, 차 시트에 붙히고 간 껌까지, 그래도 이러한 것들은 치우면 그만이지만 학생이 교수를 제치고 버스에 먼저 오르는 모습, 동학사로 갑시다! 라고 예의없이 들리도록 소리내는 모습들은 과거 버스탈 돈이 없어 충대버스가 지나가면 뛰어와 온갖 아양을 다 떨며 태워달라는 학생들의 모습과 달라 매우 안타깝다고 말하신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타고 내릴때 꼭꼭 인사하고 내리는 학생을 보면 내 26년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라고 느끼신다며 소탈하게 웃으시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맛있게 먹어주면 그게 바로 보람이지.”
  우리학교 학생회관에서 식당아주머니로 가장 오랫동안 일 하고 있는 유춘자(51세) 아주머니는 보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1979년 남편이 작고하기 전까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아주머니는 남편이 일해온 이곳 충남대학교에서 대학당국의 배려로 1980년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16년간 일해오고 있다.
  “열 그릇이던 백그릇이던 언제든지 여건이 되면 주지, 과거에는 배식시간후에 학생들이 습관처럼 찾아왔지만, 지금은 그리 많지않아, 그렇다고 습관처럼 오라는 건 아니고, 요즘에는 밥많이 준다고 투덜대는 학생도 있거든”
  우리학교의 모든 학생들을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아주머니의 그러한 모습에서 어머니의 정을 느끼게 한다.
  식당을 찾는 학생들에게 맛있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하고자 최선을 다하지만 잔밥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많이 안타깝다고···. 그래도 매일같이 내일은 더 잘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신다고 말하신다.
 “이런 일이 뭐 대단하다고 인터뷰야, 저기 있는 아줌마있지, 그 아줌마가 나 보다 더 많은 일을해. 저 아줌마한테 가”
  유춘자 아주머니의 겸손한 모습이 한층더 그 분을 빛나게 한다.
  “앞으로 퇴직때까지 계속 할거야. 나를 도와준 분들때문이라도 그래야지”
  남편이 작고 후 4남매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청춘을 우리학교 식당에 묻고, 찜통같이 더운 배식대위에서 웃음으로써 학생 하나하나를 맞이하며 밥을 퍼주시는 모습, 그리고 나에게 일자리를 준 대학당국과 열심히 살 수 있게 힘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시는 아주머니.
  이러한 따뜻한 정이 4남매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키게 한 강인한 어머님의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믿음으로 1학생회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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