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쌀에 빚덩이 몸살, 황금벌판 소용없다

  건조기 앞에 채곡채곡 쌓인 벼가마들이 풍년을 증명하듯 서 있다. 건조기는 바쁘게 가동되고 있고, 그 옆 축사에 있는 여덟 마리 소도 풍년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큼직한 눈을 이리저리 부라리며 여물먹기에 정신이 없다.
  올해, 짧은 기간 손수 모내기하다 난생 처음 본 거머리를 보고 놀랬던 기억을 살포시 떠올리며 주위를 돌아보자니 마음이 환해온다. 농촌의 가을은 과연 인고와 고생의 결실답다. 홍시를 따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 까진 밤송이, 그리고 곳곳이 쌀을 펴 말리고 있는 장면이다.
  일손이 모자라 추수는 못했지만, 짐짓 풍요의 기운을 물씬 느끼게 하는 누런 벼들을 바라보다 이 마을에 사는 임창섭(43)씨를 만났다.
  “이휴우, 풍년 되만 머햐, 봄에 빌린 영농자금 갚고 기계값 갚으면 고만이제. 힘들게 장만한 논 팔 수도 없고. 이도 못햐고 저도 못햐 답답하제”
  이 무슨 말인가. 풍년이 농촌과 전혀 상관이 없다니? 그러나, 농민분들을 더 만나면서 그들이 토해내는 시름소리들을 듣고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림같은 평화나 맑은 공기는 농촌의 추상적인 단면일 뿐이란 걸 깨달아야만 하는 것은 차라리 모르고 말 비애였다.
  한 농가를 찾아 문을 두드린다. 이 마을 아낙네들이 밭에서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에서 이 곳으로 시집온 지 5년이 넘는다는 이씨는 “학생, 고기 좀 먹어바. 맛있구만.” 권하면서 “풍년이든, 흉년이든 그게 뭔 상관이랴. 아, 풍년 되면 쌀값 떨어지제. 흉년되면 값은 높은데 팔 쌀이 없는건데 뭐. 아휴, 다 똑같제. 뭐.” 대뜸 던지는 이 말에 듣는 사람이 되려 힘들다.
  들에 갖고 갈 상추를 챙기던 김씨도 “애들 학원비도 줘야 되는디 실상 마음이야 아푸제요. 우쩌 이걸로 견디라고 이랄꼬. 이번에 중국쌀 들어 온 것도 마음 졸여 죽겠구만.”
  다섯 명의 아낙과 노인들을 더 만나도 말은 다 같다.
  교육비부터 시작해서 들어갈 돈은 태산이고, 쌀농사는 가뜩이나 수지가 안 맞는다. 걷어 놓은 나락을 보며 기쁜 것도 잠시, 봄에 빌린 돈을 갚으면 이미 사리지는 돈이다. 결국 쇠잔한 몸에 남는 고민은 ‘여기에서 더 살아야 할 지 말아야 할지’이다. 게다가 정부가 철떡 같던 약속을 어기고 중국쌀을 43만톤이나 들어온 것에 농민들이 분노한 것이다.
  더욱이 마음만 졸이고 있어야 하는 것은 딱히 대책이 없다는 것.
  이제 나이가 들어 농사는 못 짓는다는 올해 64세 노인은 쌀 수입과 함께 ‘무너지는 농촌’이라는 말도 이젠 익숙해져버린 지금, 이곳을 둘러보니 착잡하다. “다 늙어서 내가 도시 가서 뭐하겄다고? 답답해도 이젠 할 수 없는겨. 누가 날 받아 준다고. 자석들?. 걔들 다 도시에 있지. 농사는 내가 반대해. 장래에 뭐 바랄게 있다고.”
  노인들의 노후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 땅을 팔고 도시로 나가자니 도시처럼 땅값이 비싸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게 더 답답혀. 농사 짓고 남는 거라곤 아픈 몸둥이 뿐이구먼.” 이란 노정자씨의 말처럼 딱히 딱히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다.
  농림부의 올 통계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 보다 2백 62만석 늘어난 3천 5백 22만석 가량이고 이는 최대 풍작을 보여 주었던 88년 수준을 웃도는 것이다. 그러나 왜 이 최대 수확의 기쁨이 시름으로 이어지는지, 농민분들을 논에서 더 만나 답답한 마음에 다시 건조기앞에 선다. 정미소에서 근무한다는 최씨는 원인을 정부 정책에서 찾는다. “독재여, 독재. 아 농민들 다 죽일라도 그러제. 쌀값이 비싸서 농민들 올해 빚도 갚을까 하면, 정부가 개입햐서 상한까고 하한까고 정한단 말여. 아, 미국도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쌀값이 한 10만원 선이고 그 가격이면 농민들 보호 할라고 나라에서 상당 신경쓰는 거여. 쌀은 이제 무기여. 그러니까 미국도 그라제.” 같이 일하던 서천군 농민회 소속 이재룡 씨도 한 마디 거든다.
  “미국이 왜 자기네 쌀은 수입 안하냐고 난리지만, 일단 태평양 건널려면 방부제를 안 쓸 수가 없다 이거여. 엄청난 고온다습 지대니껴. 이 놈들이 결국은 쌀 팔아 먹을라고 ‘냉장선’까지 생각해 냈다는 거여. 그러니깨 엄청나제. 처음에는 싸게 들여와서 우리 시장의 경쟁력을 죽인 다음 자급력이 없으면, 고때는 지네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말여.”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자급률이 부족한 이 마당에도 식량이 곧 안보이고 무기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함께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뭐하러 오늘 가는 겨?” 방 볐는디 자고 내일 가지 왜 그리 서둘랴. 웃는 얼굴과 따스한 말들에 농촌의 훈훈함을 느껴 보지만, 그들의 가슴에 저린 고통의 무게가 내 가슴에 고대로 눌려 버스에 올라 바라보는 논은 이미 가슴 아픈 곳이었다.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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